[유통프리즘]도매법인에 산지수집과 판매 허용해야
[유통프리즘]도매법인에 산지수집과 판매 허용해야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5.05.28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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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부분의 상품 가격의 키는 소매유통에서 쥐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공급은 쉽게 늘어나는 반면 수요는 더 이상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결정의 무게중심이 점차 소비위주로 재편되면서 생산-도매-소매-소비 유통단계에서 생산자의 가격결정 권한은 독과점이나 수급조절이 용이한 상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날씨에 따라 물량 변화가 심한 농산물의 경우 작황이 좋을 경우 넘쳐나기 때문에 농민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이 같은 현상은 가중된다. 이미 농산물은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가격 지형을 새로 재편한지 오래고 농민들은 언제나 을의 입장에서 이들이 제시한 가격에 목을 매고 있다.

그나마 도매시장 출하 시 상황은 좀 나아진다. 도매법인은 농안법에 따라 농민들이 출하한 농산물을 조건없이 받아주도록 돼 있고 대형유통업체와의 거래처럼 상대매매 방식이 아닌 가격결정이 눈으로 보이는 경매를 통하기 때문이다.

도매법인들은 이들이 출하한 농산물을 경매에 붙여 가격이 결정되면 수수료를 취해 이윤을 얻기 때문에 도매법인 스스로 산지를 개발하고 좋은 농산물을 수집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것도 생산자에게는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도매법인의 이윤추구 방식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농민에 일정부분 유리하도록 손질돼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유통환경 변화에 따라 점차 상대매매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국내 최대농산물 유통을 담당하는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해 도매법인과의 경쟁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시장도매인제는 일종의 상대매매 방식의 거래제도로 법인이 경매를 통해 중도매인에게만 유통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시장도매인은 소매유통업체에 직접 농산물을 납품할 수 있다.

이 같은 경쟁체제는 도매법인의 과도한 기능 축소를 불러올 우려가 있고 정부가 원하는 정당한 경쟁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도매법인과 소비자의 연결고리는 중도매인으로 한정된 반면 시장도매인은 직접 산지와 소매유통과의 거래를 통해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최적의 유통환경을 제공받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불합리한 경쟁은 가락동 도매시장을 위축시켜 그 피해가 오히려 농민에게 전가될 위험성도 있으며 가격을 선도하는 대형마트와의 주도권 싸움에서도 밀려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시장도매인을 도입해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면 도매법인의 역할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규제 또한 풀어야 한다. 중도매인을 통해 유통하는 제한적인 활동반경에서 벗어나 대형유통업체와 거래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어 도매법인 스스로 시장 활성화를 꾀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는 농민과 대형마트와의 거래에서 소매유통에 쏠린 가격협상력을 역량이 있는 도매법인에 맡기면서 힘의 분산을 유도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산지는 도매법인과 시장도매인이 관리하고 소비지는 대형유통업체나 중소슈퍼마켓이 담당하는 분업구조로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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