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계약재배 확대 실효성 있을까.
[기자수첩] 계약재배 확대 실효성 있을까.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5.06.04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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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최근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의 일환으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농산물 일부 품목의 계약재배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기존 농협에서 하고 있는 계약재배 사업에 제한적으로 경쟁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계약재배 사업의 본 취지는 시세에 상관없이 농가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고 물량이 부족할 때 계약재배 물량을 풀어 농산물 가격 변동폭을 줄이자는 것이지만 최근 연이은 채소값 하락 여파로 계약재배 사업 주체가 큰 손실을 보고 농민들의 동참 의지도 낮아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배추의 경우 시세가 좋지 못해도 계약물량을 달성하기 위해 농가들이 별다른 수요 예측없이 생산에 매달리게 되면서 재배면적이 크게 줄지 않았고 작황까지 좋았던 탓에 2년 연속 배추가격 하락이라는 쓴맛을 보게 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계약재배는 꾸준히 이뤄져 왔다. 전국 배추생산량의 80%를 담당하고 있는 산지유통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과 포전거래를 통해 계약금을 지불하고 포전 관리는 산지유통인들이 하는 형태의 거래가 관행처럼 이어져 온 것이다.

문제는 굳이 정부가 나서서 계약재배 주체를 바꿔 가면서 국민 세금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농협의 계약재배 사업처럼 연 700억원의 손해를 보는 등 리스크를 떠안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산지유통인들은 시장논리에 밝아 배추값이 떨어지면 다음 작형의 재배면적을 줄이고 배추값이 오르면 자연스레 재배면적을 늘리면서 시장 상황에 맞게 가격형성을 하게 된다. 당연히 가격하락의 리스크는 산지유통인들이 분산하게 된다.

정부 계약재배가 확대될 경우 재배면적을 줄이지 못하게 하는 등 가격하락을 견인하게 되고 계약재배에서 제외된 농가의 폐업을 가속화시킬 우려가 크다. 배추값 하락이 이어지면 리스크를 감당못해 포전관리에 뛰어난 산지유통인들의 몰락을 부추길 수 있다.

포전관리는 배추 물량을 조달하는 데 핵심기능이다. 산지유통인은 포전관리가 그들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많은 자금을 투입해 좋은 배추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지만 정부가 계약재배의 주체가 되면 부실한 포전관리로 기상악화나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2010년 배추파동을 계기로 계약재배 사업을 도입한 정부가 되려 무분별한 계약재배 사업 확대로 또다시 2010년의 악몽을 재현할 수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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