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프리즘] 근본적인 수급조절 정책 필요
[유통프리즘] 근본적인 수급조절 정책 필요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5.06.22 1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번 가뭄만 잘 이겨내면 그래도 좀 돈을 벌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전라북도 남원에서 배추농사를 짓고 있는 김 씨는 이렇게 말끝을 흐렸다. 풍년보다 오히려 흉년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농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났다. 김 씨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지난 2년간 예상치 못한 풍년으로 농산물 공급이 과잉되면서 가격이 폭락해 경영난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번 가뭄을 잘 견뎌내면 어느 정도의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대감에 흉년이 예상되는 데도 미묘한 대답을 내놓는 이유다.
 
정부에서 최근 농산물 유통개선 성과를 발표했다. 수급조절 부문에서는 체계적인 수급관리로 농산물의 가격 변동성을 완화했다고 밝혔다. 산지에서는 정부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데 정작 정부에서는 수급관리에 대한 정책을 자화자찬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부는 2013년 4월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농산물수급조절위원회를 구성했다. 수급조절 위원들과 향후 시장상황을 관측해 품목별로 수급조절매뉴얼을 만들고 가격의 등락폭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 정책은 현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서 전담하며 배추, 무, 건고추, 마늘, 양파 등 5개 품목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주기적인 협의회를 개최해 수급조절을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위원회가 만들어진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지금과 같은 가뭄에는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aT는 배추와 무 등 주요 공급과잉 품목에 대한 산지폐기와 격리를 실시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 격리지원금으로 인해 농민들은 물론 산지유통인들의 참여가 저조했다. 그나마 폐기한 농산물도 시장에 나올 수 없는 저급품 위주로 격리돼 시장가격에 전혀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정부에서 주요 대책으로 내놓은 산지 격리 정책의 문제는 가격을 지지하지 못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주요 채소값이 하락하자 농민들은 재배면적을 줄이는 등 상대적으로 가격 등락폭이 적은 대체작목으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재배면적이 크게 줄자 지금과 같은 가뭄에 손쓸 방도가 없어진 셈이다. 농산물 단수는 줄고 감모율이 심화된다는 예측이 잇따라 발표되자 2010년과 같은 배추파동이 오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는 확산되고 있다.
 
또한 가격지지가 되지 않자 산지의 선물거래까지 크게 줄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포전거래하던 산지유통인들도 자금난으로 하나둘씩 폐업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산지 자금이 마르자 돈이 없어 파종을 하지 못하는 농민들도 생겨났다. 짧게는 작기별, 길게는 연단위로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농민과 유통인들은 계속된 가격하락으로 폐업이 이어졌다.
 
가격을 지지해주지 않는 산업은 결국 고사하게 된다. 지금까지 정부정책은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농민들과 농산물 유통과 관련된 산업에 리스크를 떠안기는 형국이다. 가격 상승에는 민감하고 가력 하락에는 관대한 정부가 농민들은 달가울 리가 없다. 결국 농업의 기초체력 회복은 정부정책에 달렸지만 지금의 정부는 농업에 대한 잘못된 풀이 방정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5년간 수급조절을 위한 사업에 3조5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쏟아 부었다. 국민들의 세금이 과연 농민과 농업을 위해서 쓰였는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제 단기적인 성과에서 벗어나 농촌의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는 장기적인 수급관리 대책이 절실한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