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에 웃음꽃 피면
농어촌에 웃음꽃 피면
  • (주)농축유통신문
  • 승인 2011.06.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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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교수 장원석 (전 우리농업지키기 국민운동 집행위원장)

‘스마일 농어촌운동’이 성공하여 농어촌에 웃음꽃 피면, 국민이 행복해진다. 왜냐하면, “농어촌은 뿌리요, 도시는 꽃”이기 때문이다.

농어촌이 살기 어려워 농어촌 주민이 도시로 몰려 들면, 도시의 주택난, 교통난, 실업난, 사회적 불안이 증가된다. 농어촌이 살기 좋아 귀농·귀촌이 많아지고, 5일은 직장 일에 몰입하고, 토요일 일요일은 자녀와 함께 농어촌에서 민박을 하면서 ‘자연과 함께’, ‘흙과 함께’ 하면, 농어민은 농외소득이 늘고 일자리가 생기며, 도시민은 가족애를 다지고 휴식을 취하여, 도농불이(都農不二) 온국민이 행복해진다.

’70년대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지질이도 못살았다.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4명의 친구가 가난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대학생은 면 전체에서 2명밖에 없었다. 대학생을 둔 농가에서는 논 팔고 밭 팔고 재산목록 1호인 소까지 팔아 수업료를 냈으니, 대학을 가리켜 우골탑(牛骨塔)이란 말이 생겨 났다. 필자 역시 3종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다. 요사이처럼 정부의 무이자 대출지원제도와 같이 돈을 꿀 수 있는 방법도 없어, 친척을 찾아가 사정을 하다가 박대를 당했을 때, 피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선 경험은 필자만의 사례가 아니었다.

이런 때에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돈이 없어 대학은 물론 중학교를 못간 친구들은 농사를 짖다가 새마을운동의 열렬한 전사가 되어, 마을을 부촌으로 탈바꿈 시키고, 도시의 월급쟁이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게 되었다. 필자가 초·중·고교 시절, 보면서 자랐던 우리 농촌은 상당수의 사람들이 게으름을 피우고 술과 놀음에 빠지기도 하였다. 스스로 돕는 정신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웃사촌이라는 공동체정신은 퇴색하고, “4촌이 땅 사면, 배아프다”는 심리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 “새벽종이 울렸네. 어서 어서 일어나, ---”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가 가난을 벗어나려는 농어촌에 들불처럼 일어나,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었다. 농어촌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직장과 공장에서도 일어났다.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 ‘조국근대화’의 신화가 창조되었던 것이다.

‘스마일 농어촌운동’은 제2의 새마을운동이다. 따라서 새마을운동의 정신과 열정은 계승하되, 21세기가 요구하는 정보, 지식, 신기술, 새로운 생각, 융복합, 농어업이라는 1차산업의 6차산업화와 성장동력화, 지역 발전과 글로벌 감각, 현장 맞춤형 경영전략과 마케팅전략이 접목된 21세기적 운동이어야 한다.

‘지식정보화 사회’에 맞는, 나아가 ‘스마트한 지혜의 사회’로 거듭나는 총체적 “혼·창·통”의 혁명운동이어야 한다. 도농상생을 넘어 자연과의 상생, 우주만물과의 상생과 합일, 전일적(全一的) 생명운동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율과 창의, 상생과 협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스마일 농어촌운동’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리하여 잘사는 농어촌, 행복한 농어촌, 도시민의 쉼터, 놀터, 안식처가 되도록 해야 한다. 농어촌이 잘살아야 국민이 행복하다. 농어촌이 잘살아야 선진국이 된다. 농어민의 행복한 미소와 웃음(스마일)이 있을 때, 나라가 행복하게 된다. 이는 필자만의 소망과 믿음, 농어촌에 대한 사랑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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