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니즈 반영 못하는 쇠고기 등급제
소비자 니즈 반영 못하는 쇠고기 등급제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5.08.07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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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 기자의 축산 이야기]

세분화된 등급 완화 필요···소비심리 반영 유연성 높여야
1등급 위주 생산방식 벗어나 2등급 브랜드 육성 방안 필요
 

최근 한 언론사의 보도로 한우 등급제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주요 보도 내용은 높은 등급의 한우라고 해서 좋은 쇠고기인지 여부가 논의의 쟁점이 됐다. 지방함량으로 결정하는 현 등급제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등급제에 대한 개선 필요성은 업계 내부에서도 수없이 제기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쇠고기 등급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까.

현 등급제를 개선하기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은 현 쇠고기 등급제가 가격을 책정하는 주요 지표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높은 등급 판정을 받을수록 높은 가격을 받게 돼 있어 한우농가들은 1등급 이상의 한우를 사육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 최고 등급과 최저 등급의 가격 차이는 한우 소비량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600kg 기준 마리당 최대 200만원의 가격을 더 받을 수도 덜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기존 1등급 이상을 꾸준히 출하한 농가들은 등급제의 변화로 손실을 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고기 구매 패턴은 점차 변하고 있다. 최근 돼지고기의 경우 지방함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목살 가격이 삼겹살 가격을 추월한 것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빠르게 소비패턴은 변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주장은 최근 들어 쇠고기 유통업계에서도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육가공공장 관계자는 쇠고기가 상대적으로 기름이 적은 특수부위로 이동하고 있는 추세가 감지되고 있다며 이제 소비패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소비패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우 생산농가들은 여전히 등급제에 목을 매달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축산물 품질평가원이 발표한 한우 등급별 출현율을 살펴보면 1++등급은 전체 등급판정 물량의 9.5%를 차지했고 1+는 22.8%, 1등급은 32.7%를 차지하면서 1등급 이상의 쇠고기가 전체 물량의 65%나 차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현 제도가 1등급 이상의 기름기가 많은 고기 생산을 부추기고 있는 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구이용 문화에 따른 우리나라 육류소비 패턴을 볼 때 기름기가 많은 1등급에 대한 수요가 많기 때문에 경제학적으로 가격이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다만 정부가 정한 등급제로 인해 소비자의 인식이 ‘질좋은 고기, 질나쁜 고기’ 로 오인하게 만든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국민의 입맛을 재단한다는 오해 또한 불러일으키고 있다.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 농무부의 따르면 미국의 경우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육질등급과 육량등급으로 나눠져 있다. 육질등급은 마블링으로 육량등급은 지방대비 고기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로 나뉘는 것은 비슷하나 각 단계별 기준은 우리 기준과 비교해 느슨하게 설정돼 있다.

프라임, 초이스, 셀렉트, 언그레이드로 나뉜 미국의 등급제는 한우 1등급의 지방함량이 미국의 제일 높은 등급인 프라임 등급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초이스의 경우 범위가 넓어 우리나라의 1등급부터 2등급을 아우를 만한 지방함량을 보이고 있다. 등급별 세분화가 상대적으로 덜 된 미국의 경우 소비 심리에 따라 가격을 견인할 수 있는 여지가 우리나라보다 많아 소비 패턴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우리나라도 지금의 등급제 개혁이 어렵다면 각 단계별 지방함량을 낮추는 방식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한우 1++ 등급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비육 후기, 즉 출하단계 직전에 엄청난 양의 사료를 먹어야 한다. 한우 생산비에 절반을 차지하는 사룟값 부담을 고스란히 농가가 지게하는 현행 방식을 좀 더 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등급제를 단계별로 지방함량을 낮춰 이를 소비자에게 홍보한다면 사룟값에 대한 부담 완화는 물론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을 반영한 건강한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홍보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지방함량이 적은 2등급을 하나의 브랜드로 육성하는 것이다. 건강한 소고기라는 컨셉으로 브랜드화 한다면 질이 떨어지는 소고기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2등급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가격도 오를 개연성이 있다. 물론 1등급 출현률이 낮아지면서 한우 농가의 소득이 떨어진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역으로 1등급에 대한 희소가치가 증대하면서 가격이 오를 개연성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방함량과 관련된 등급제에 대한 논의는 소비자는 둘째 치더라도 농가들 소득향상을 위해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사료에 대한 문제는 한우 농가들이 생산비를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소비패턴을 반영한 지방함량을 줄이는 작업은 소 생산의 회전수를 늘리고 분뇨처리에 대한 부담을 완화시켜 줄 수 있으며 지방이 많다는 한우의 부정적 이미지까지 떨쳐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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