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속 풍작, 재고쌀 처리 고심 끝에 '사료화'
2년 연속 풍작, 재고쌀 처리 고심 끝에 '사료화'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5.12.18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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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프리즘] 남는 쌀 사료화 쟁점 집중 분석

품종개량 등 총체벼 사료연구 장기과제 채택 필요
'주식을 가축에게' · · · 국민정서 반감 줄여야

겨레의 주식인 쌀이 남아도는 시대다. ‘흰 쌀밥에 고기 한 점’이 한 때 부를 상징했다면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쌀은 그저 ‘흔하디 흔한 음식’ 중 하나로 전락했다. 한참 경제성장 가도를 달리던 박정희 정권 때는 대통령이 직접 쌀 주산지를 찾아 농업관련 공무원을 독려했던 적도 있었다. 그만큼 희귀해서다.

이후 품종개량과 각종 농자재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생산성은 높아져 쌀은 희귀성을 잃어버렸고 그렇다고 국민 주식으로서도 확고한 자리를 꿰차지도 못했다. 해마다 곤두박질치는 국내 쌀 소비량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1970년대 한국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121.8kg에서 지난해는 65.1kg으로 40여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기후가 유독 좋았던 탓에 전국의 쌀 저장고는 넘쳐났고 몇몇 지역 RPC에서는 아예 도정을 거부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농민들은 논 대신 국회를 찾아 시위를 하는 등 항의가 빗발치자 정부는 쌀 사료화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묵은쌀을 가축 사료로 이용해 재고를 줄여보자는 취지다. 이제 겨레의 주식을 가축에게 먹이는 것을 고민하는 시대가 왔다.

‘쌀사료 논의’ 처음은 아니다
 
남는 쌀을 사료로 이용하자는 논의는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지난 2008년과 2009년에도 연속된 풍작과 대북 쌀지원 중단이라는 악재가 맞물리면서 쌀재고를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이르자 정부는 논소득기반 다양화사업을 벌인다. 논에 쌀이 아닌 타 작물을 심어 쌀 생산은 줄이고 타 작물의 자급률을 높이자는 취지였지만 당시 벼 대신 논에 심겨진 배추, 대파 등 신선채소 공급과잉을 불러오면서 부작용이 속출했다.
 
2008년은 국제곡물 가격이 정점으로 치솟고 국내 사료가격 또한 출렁이면서 천수답 산업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료산업에 대한 해법이 필요한 시기였다. 타작물 공급과잉에 대한 부담과 쌀 생산과잉이 맞물리면서 자연스레 사료에 대한 논의로 옮겨 붙기 시작했다.
 
당시 농촌진흥청에서는 총체벼를 사료로 쓰는데 대한 연구에 돌입했고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경제연구원에서는 일본의 사료용 총제벼 이용현황과 쌀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 출장길에 오르기도 했다. 문제는 사료용 벼를 재배하기에는 경제적 여건이 녹록치 않았다.
 
2011년 일본의 식용쌀 판매가격은 10a 당 200엔가량. 사료용 쌀 구입가격은 10a 당 30~50엔으로 사료용 쌀을 재배하기에는 농가들의 수취가격이 현저하게 낮았던 것이다. 이처럼 농민들을 사료용 쌀을 재배하도록 할 수 있는 유인책은 부족했고 정부의 예산을 쓰자니 부담 또한 감당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후 2010~11년 쌀 재고 부족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계속됨에 따라 쌀의 사료화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농민과 국민들을 설득하기에는 쌀 사료화 카드는 명분이 없었다.
 
‘주식을 가축에게’ 국민정서의 거부감
 
쌀을 가축에게 먹인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이 있다. 이는 쌀을 귀하게 여기는 풍습이 뿌리 깊게 남아있고 가난으로 점철된 과거 우리나라 역사가 주식을 가축과 공유한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조선시대에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구황방(救荒方)이라는 방법을 썼다. 부족한 쌀에 일상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솔잎과 같은 것들을 섞어 양을 늘려 영양을 보충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한반도에서 쌀을 마구 수탈해갔고 만주에서 옥수수, 콩을 들여와 부족한 영양을 채웠다.
 
구황방은 자연스레 변비를 일으키는 원인이 됐다. ‘똥구멍이 찢어지는 가난’이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 이처럼 우리 겨레의 아픈 과거는 뼛속까지 쌀의 귀함을 각인시켜왔다. 쌀은 소비하지 않으면서 국민 정서는 쌀을 귀한음식으로 추앙하는 모순된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이에 가축과 주식을 공유하는 반감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저 멀리 북한주민의 굶주림도 이 같은 인식을 형성하는 데 한몫했다.
 
쌀 사료화 걸림돌 많지만 장기 과제로 다뤄져야
 
국민 정서도 정서지만 쌀이 사료로써의 가치는 있을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밥쌀용 쌀 생산을 줄여주고 작목전환으로 인한 타 작목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또한 조사료 자급률을 올리는 데 일정부분 역할을 할 수 있고 쌀 과잉 해소를 위한 예산도 최대한 줄여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성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총체벼는 밥쌀용 쌀과 비교해 수익이 절반에 불과해 농민들이 재배할 유인책이 적고 지금과 같이 해외에서 싼 값에 들여올 수 있는 옥수수 대두박을 대체할 수 있는 시장을 구축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품종이 제한적인 것과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걸림돌이다. 국내에서 개발된 총체벼 품종은 2006년에 육성된 녹양, 2009년에 개발된 목우, 2010년에 나온 목양뿐. 이들 건물 수량은 ha당 최소 16.5t에서 최대 20.6t으로 밥쌀용 쌀에 비해 월등하지만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품종 개량도 넘어야 할 과제다.
 
축산농가의 인식도 문제다. 현재 높은 지방을 형성하기 위해 각종 배합사료를 써왔던 농가로서는 사료의 향기만 달라져도 사용을 기피할 정도로 사료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사료용 쌀의 수요가 제일 중요한 만큼 경종농가와 축산농가와의 연계는 사료용 쌀의 성패를 결정지을 만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료용 쌀에 대한 연구가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쌀 소비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계속되고 있고 각종 축산물 소비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 곡물가격에 연동되는 사료가격의 불안정성은 국내 축산업계가 풀어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쌀 생산이 과잉될 때마다 불거졌던 쌀 사료화 문제는 사료업계, 경종농가, 축산농가가 함께 풀어야할 문제로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며 “가축의 기호성과 사료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국가 장기과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쌀을 가축에게 먹이는 시대, 농축산업계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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