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농업적폐, 이제는 청산하자 ⑭ 농업을 좀먹는 학계 적폐
[기획시리즈] 농업적폐, 이제는 청산하자 ⑭ 농업을 좀먹는 학계 적폐
  • 김영하 대기자
  • 승인 2017.09.22 14: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혁에 역행하는 일부 학자들의 이기적 행보
그동안 농어업 부문에 누적된 적폐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보조금의 누수를 비롯해 부재지주들의 직불금 가로채기, 각종 복지지원금 가로채기, 농수축협의 계통구매계약의 자금누수, 농가자재 농가지원사업에서 발생하는 자금 누수, 농자재 판매장려금을 활용한 각종 비리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적폐는 해결되지 않고 확대일로에 있고, 각종 불법과 비리를 퇴치하지 않으면 농정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농민이 대접받는 농정을 펼치는 것은 요원해진다. 분야별로 어떤 구석에 적폐가 쌓이고 있는지 시리즈로 게재한다.<편집자주>

 

“그동안 한국의 농업경제학은 피와 살과 영혼은 지우고, 피도 눈물도 감정도 없는 경제를 상정한 신고전학파의 경제이론만 존재했다. 왜곡되고 경직된 자유시장 경제구조를 합리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감싸 안고 있는 말로만 시장경제 만능주의가 경제정책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농촌경제학 등 비주류 부문별 경제학 분야는 현상유지에 급급할 뿐 생명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약자와 취약계층의 멍에가 되어 사회 양극화를 배태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용역사업하기에 너무 바쁘다. 학자라는 사람들이 밥벌이 교수직에 안주하여 돈을 받지 않으면 연구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직업인으로서의 교수, 보직자로서의 교수만 존재하고 ‘진정한 선비학자’가 줄어들고 있다.”

한국농업경제학회가 지난 7월 가진 창립 60주년 기념 2017년 하계학술대회에서 한국 농업경제학계의 거두인 김성훈 전 중앙대 교수(전 농림부 장관)은 후배 학자들을 향해 이같이 일갈했다. 김 교수는 또 현재와 앞으로의 농업경제학은 환경생태학, 사회경제학, 문화경제학, 보편적 복지학 등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렇게 한국의 농업계 학자들은 반성의 계기를 갖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학계는 사회적으로 여러 곳에 참여하면서 농정개혁이 기여하기도 하지만 개혁을 역행하는 사례도 많다.

김영삼 정부 이후 역대 농림부(농수산부, 농림수산식품부 등 포함)는 협동조합 개혁을 위해 농협개혁위원회를 꾸려 개혁안을 마련했다. 당시 위원회에는 농민단체는 물론 농협중앙회 관계자, 학계 등이 함께 위원으로 참여해 논의를 벌여왔다. 그러나 개혁안의 결과는 농민단체가 요구하는 안이 대부분 반영되지 않고 농협중앙회의 입장으로 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학자들이 농협중앙회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친 농협적 학자들이 농정개혁을 좀먹은 것이라고 모 전직 조합장은 당시의 이야기를 입에 거품을 토하며 말한다. 특히 J대학의 모 교수 등 몇 명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현재 농식품부 내에 설치된 농정개혁위원회에도 모 조합장은 우려를 표한다. 위원으로 위촉된 인사들 중에 농협 관계자와 친농협적 학계를 포함하면 6명에 이른다며 한 이야기다. 학자들이 거마비에 눈멀어 정부나 농협중앙회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진들은 또 자기의 권한을 무소불위로 행사한다. 현장 실용연구를 발주하는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농기평)의 경우 WTO 출범이후 우리나라 농업기술의 연구가 실용성이 적다는 이유로 생긴 연구기관으로 현장전문가들에게도 연구용역을 발주한다. 그런데 이 용역을 심사하는 위원회는 주로 학자들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은 현장연구이더라도 학계에 일정부분의 연구가 부여되지 않으면 심사에서 탈락하거나 연구용역이 취소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농기평은 지난해 ‘친환경 쌀을 이용한 쌀면 제조’에 대한 연구를 친환경농업 관련 식품회사에 용역을 줬다. 그런데 농기평은 과제의 진행률이 낮고, 평가점수도 낮게 나와서 2년차 연구를 중단시키고 사업비를 반납토록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친환경농업협회와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는 최근 농기평의 불공정한 연구심사에 대한 규탄성명을 발표하고, 친환경농업협회가 수행한 연구를 중단한 것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또한 공정한 재심사와 함께 농림예산을 이용한 각종 연구가 현장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지 전면적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단순히 자기의 연구용역이 중단된 것에 대한 불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계, 연구소의 전문가들이 서로 돕는 산업구조가 만들어져 있으며, 농업인단체가 연구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대학이나 연구소에 의뢰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사업평가가 나온다는 것이다. 연구 평가시스템이 이론연구, 정량연구 등의 평가기준을 둬서 농업현장과 동떨어지고, 대학, 연구기관, 기업체 등에 유리하게 되고 있는 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농민단체 관계자들의 이야기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또 선거철만 되면 일부 학계는 보수든 진보든 선거캠프를 기웃거리고 공약작업에 참여하거나 선거운동을 도와 한자리를 구걸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자신이 만든 농정개혁안을 국가정책으로 펼쳐보려는 의도가 깔려있겠지만 정권에 토사구팽 당하는 사례가 많기에 우려된다. 2002-2007-2012년 수많은 교수들이 대선과정에 공약을 수립에 참여하는 등 그 곁을 기웃거렸다.

농과대학도 변했다. 전국의 모든대학이 ‘농’자를 버리고 생명과학대, 자연자원대 등으로 바꿨고, 대학의 교수들도 농업현장을 버렸다. 그렇게 변한지 20년이 넘었지만 현장을 연구하고 고민하며, 농업-농촌-농민의 미래를 고민하는 학자는 골동품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지난해 윤석원 전 중앙대 교수는 지난해 농사지으러 강원도의 한 시골마을로 들어갔다. 윤 교수는 중앙대와 미시시피주립대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한 학자였지만 정년을 3년이나 앞둔 지난해 2월 명예퇴직을 자청한 것이다.

윤 교수는 말한다. “더이상 농업•농촌•농민에 빌붙어서 먹고 살고 싶지 않다. 기생충보다 백번 낫다. 당당하다. 노동하라.” 이젠 농업현장에서 살겠다는 의지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