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마이스터…왕산종묘 권혁기 대표] 감자명인, 농업마이스터는 인생 터닝포인트
[농업마이스터…왕산종묘 권혁기 대표] 감자명인, 농업마이스터는 인생 터닝포인트
  • 김수용 기자
  • 승인 2018.06.08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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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기 대표 부부가 하트를 그리고 있다.
권혁기 대표 부부가 하트를 그리고 있다.

[농축유통신문 김수용 기자] 삶고 굽거나 튀기는 등의 다양한 요리방법과 다방면 요리에 사용되는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일제식민지와 6·25전쟁 때도 산골짜기 다랑이 밭을 일궈 만든 감자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감자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유일한 감자 명인이 있어 화제다. 그는 바로 왕산종묘 권혁기 대표다. 그는 명인이 되기까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농업마이스터를 최고로 꼽는다.

권혁기 대표는 농촌에서 생활한 다는 것은 정말 힘들고 외로운 일이다. 그럴 때 나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 농업마이스터였다. 그 때부터 감자에 대해 더욱 자신감이 생기고 더욱 성실하고 최고로 거듭나기 위한 열정이 생겼다라며 농업마이스터에 대한 지난 일을 회상했다.

사실 그는 안반데기로 유명한 강원도 강릉출생이다. 권혁기 대표의 부모도 감자농사를 지었고 그도 농업고를 졸업하고 감자농사를 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씨감자를 주로 생산했다. 부모님이 알려주신 또는 어깨 너머로 배워 수십 년간 그냥 감자를 생산했다. 생산이 부진하면 하늘 탓도 하고 운 탓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촌에 사는 우리부부는 쉬는 날 없이 없을까? 남들은 종교 활동을 해도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데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권혁기 대표와 부인인 조희주 대표는 같이 강원농업마이스터대학 감자학과에 지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열정은 학생에서 강원농업마이스터대학 강사로 더 나아가 우리나라 유일한 감자 명인으로 만들었다.

권 대표는 예전에는 농업에 대한 교육이 전무하다 시피 했다. 있더라도 농업인들 단체로 모아두고 정부에서 혼자 진행하는 그런 교육이었다. 이론을 좀 더 알면 더 잘 키울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농업마이스터를 다니며 하게 됐다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을 가지고 열심히 해보자라고 마음을 다짐했다고 밝혔다.

사실 그는 농업마이스터에 처음 갔을 때 25년 이상 지어온 감자농사에 대해 얼마만큼 알겠냐며 무시했지만 첫 수업을 듣고 그 생각이 바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론이 담긴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는 정확했고 이런 부분을 25년간 씨감자 농사를 지며 간과했다고 말한다.

이 당시 권 대표는 남들이 하는 밋밋한 감자농사를 떠나 최대한 극대화를 시켜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씨감자사업은 개인을 넘어 농업회사법인으로 발전했고 한해 1200톤이라는 씨감자를 유통하는 거대 감자종자사업체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사실 왕산종묘가 판매하고 있는 1200톤이라는 씨감자는 특별한 홍보 없이 입소문으로만 전해져 매년 완판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단오, 백자, 조풍, 홍영, 자영, 금서 ,남작, 두백, 대서, 서흥, 미소, 고운, 오륜 등 총 13가지의 종자를 개발 또는 복원을 성공해 다양한 품종을 유지시키고 있다. 특히 자체 채종포장을 보유하고 조직배양부터 보급종의 단계까지 생산관리하는 우리나라 유일한 민간 씨감자 전문 농업회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또 자녀도 농업과 관련된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게 되면 아버지인 권 대표보다 더욱 훌륭한 종자산업의 일꾼이 되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렇듯 국가에서 이루지 못한 감자의 식량화를 위해 노력하며 감자의 명인으로 통하는 장본인이지만 앞으로 갈 길은 아직 멀었다고 한다.

권혁기 대표는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품질하나 만큼은 최고로 꼽히지만 앞으로도 어긋남 없이 충실히 이 땅의 감자를 책임지겠다훗날 우리나라 감자가 세계 감자시장을 주도하고 그 주역이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정직하게 나아가겠다고 앞으로의 포부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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