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축전염병 성공 방역의 마침표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다
[사설] 가축전염병 성공 방역의 마침표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8.17 0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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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K방역이 전 세계 모범사례로 추앙받고 있다. 신속한 초동조치,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강력한 방역, 치밀한 추적 검사가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사실 K방역이 주목받기 전, 대한민국은 가축전염병 방역으로 전 세계에 입소문이 난 상태였다. 국내에서 AI는 지난 2년간 발생하지 않았고, 구제역은 지난해 1월 수면 위로 오르는가 싶더니 일주일 만에 자취를 감췄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도 사육농가에서의 발생을 23일 만에 잠재우면서 전 세계 방역당국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가축 질병이 발생하고, 수십 년간 가축 질병 청정국을 선언하지 못하는 것과 비교하면 대한민국의 질병 컨트롤 능력은 입증받은 셈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 사무총장조차 한국의 가축전염병 방역 사례를 전 세계 방역정책에 참고가 되도록 알리겠다고 나선 마당이니 방역에서는 대한민국이 선두주자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것처럼 지금의 가축전염병 방역은 축산 농민의 눈물과 수많은 공무원의 땀으로 만들어진 결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ASF가 국내에 상륙하자마자 주말도 반납한 긴급회의가 매일 소집됐으며, 회의 시 평균 800여 명의 공무원이 참석할 정도로 전시에 가까운 비상상황이 계속됐다.

경기 북부지역의 한돈 농가들은 강력한 방역 정책으로 사실상 초토화되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고, 현장 공무원들도 살처분과 민원으로 격무에 시달려야 했다. 파주의 한 공무원은 강도 높은 노동과 스트레스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지금도 ASF로 인한 전시체제는 현재 진행형이며, AI 예방을 위한 가축 사육 제한조치로 많은 오리 농가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지속 가능한 방역 시스템이 필요하다. 가축전염병 대응은 사전 예방도 중요하지만 발생하고 난 후의 초동조치가 생명이다. 축산 농가 스스로 의심증상이 발견되면 즉시 신고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농장을 살처분하더라도 정부에서 책임져 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며, 이에 상응하는 보상도 뒤따라야 한다. 강력한 초동조치에 상응하는 당근이 있어야 질병을 숨기며 발생할 수 있는 지연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다.

정부는 방역 인력에 대한 순환 시스템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가 큰 힘이 되고 있으며, ASF 사태에서도 수많은 수의사들의 노력, 전시를 방불케 하는 24시 컨트롤타워가 가동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방역인력의 과부하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방역관련 부서는 냄새도 맡으면 안 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관련 부서 공무원의 삶의 질이 최악인 상황에서 마라톤과 같은 가축전염병 예방 업무는 대체인력과 같은 구원투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가와 정부의 협력과 방역의식 제고다. 물론 ASF 보상 문제나 사육휴지기제와 같은 방역정책으로 정부와 농가와의 잡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번 ASF의 조기 진화는 농가와 정부의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땅에 묻어버린 축산 농민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지만 정부와 농가와의 소통은 방역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농가들 또한 방역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선진 축산으로 가기 위한 의식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

전염병은 계속 진화하며 카멜레온처럼 변이해 틈새를 파고든다. 아무리 철저한 예방도 언제든 무력화할 수 있는 게 전염병이다. 언제까지 정부가 선두에 서서 농가들을 끌고 가는 것은 한계가 존재한다. 가축 질병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농가 스스로 철저한 방역의식으로 무장하고 정부는 농가가 잘할 수 있도록 후방에서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ASF 사태로 사상 초유의 대규모 초동방역이 실시된지 1년이 지났다. 4개 시군 전체의 돼지 농장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이런 아픔에도 불구하고 선진 농가 몇몇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가 관여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전염병 청정구역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한 번도 학습하지 않았던 전염병이 창궐했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초기 방역의 성공을 바탕으로 ASF 완전 박멸과 구제역, AI 등에서 해방될 수 있는 장기적이고 다각도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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