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원 금배추 자초한 정부 '수급조절' 패착
3만 원 금배추 자초한 정부 '수급조절' 패착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9.18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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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내린 김치공장 '개점휴업선언
정부 수급정책 "실기했다비판 봇물
기후대란에 수급조절매뉴얼 유명무실


정부와 수매 계약을 체결했지만 긴 장마로 품위가 떨어져 계약이 파기된 배추밭.
정부와 수매 계약을 체결했지만 긴 장마로 품위가 떨어져 계약이 파기된 배추밭.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기자] 

긴 장마 이후 배추 가격이 큰 폭으로 치솟자 김치 공장 곳곳이 폐업 위기에 처했다. 수급조절매뉴얼에만 의존한 정부의 탁상행정이 자초한 인재라는 비판이 나오는 동시에 기후 변화에 대응한 견고한 수급조절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3년째 김치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이번 달 김치공장의 문을 걸어 잠갔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배추 가격에 경영비를 맞출 수 없어서다. 공장의 모든 기계를 올 스톱시켰다는 A씨는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소비심리에 외식경제가 쪼그라들면서 폐업까지 고민하고 있다.

다른 김치 공장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웃돈을 주지 않고는 배추를 구할 수 없는 탓에 언제든 간판을 바꿔 달아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복수의 김치 공장 대표들의 하소연이다.

A씨는 "고공 행진 중인 배추 가격으로 도저히 경영비를 맞출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회사 문을 닫았다"면서 "5~8톤 분량의 배추 트럭 한 차를 사려면 2,000~2,500만 원을 줘야 하는데, 절임배추를 1만 원(20kg)에 팔면 계속해서 적자만 쌓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수급조절 실패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기름을 부었다"며 날을 세웠다.

9월 들어 배추 가격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가락시장에 따르면 9월 1일 10kg 배추망 상품 기준 도매 최고가격이 전년 동일 대비 162%인 16,500원으로 출발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7일 26,000원을 기록하며 지난해보다 2배를 웃돌았다. 급기야 12일에는 27,500원까지 치고 올라갔고, 15, 16일에는 각각 31,500원 32,500원을 기록하면서 배추 3만 원 시대를 열었다.
 

9월 배추 도매가격 추이(자료: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상품 최고가)
9월 배추 도매가격 추이(자료: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상품 최고가)

유례없는 긴 장마와 연이은 태풍으로 최악의 생육 환경이 촉발한 배추 가격 폭등이지만 정부의 미흡한 대처도 한몫했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복수의 유통 전문가들은 "천재지변이라는 큰 변수가 있긴 했지만 보통 봄배추 수매시기인 6월이 아닌 7월에 수매를 시작하면서 비축 물량이 감소, 가격을 방어할 만한 배추 물량과 품위를 갖추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정부는 봄 배추가 한창 저렴한 시기인 6월을 놓치고 장마가 예정된 7월에서야 수매를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봄배추 대부분이 비를 맞아 품위가 떨어지면서 정부가 계획했던 5,000톤을 채우지 못하고 유찰이 이어진 것이다. 겨우 3,201톤을 비축한 정부는 가격이 들썩이는 8월부터 9월까지 2,870톤 방출에 들어갔지만 시장 가격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급조절매뉴얼에 따라 적절한 수매와 방출을 했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기후변화와 같은 재난에 수급조절매뉴얼은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정부의 견고하지 못한 수매 시스템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수매 입찰 계약 시 모든 리스크를 낙찰자가 떠안는 등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산지유통인은 "농산물 수매 시 정부는 낙찰된 품목의 현장을 찾아 검증을 하고 생육상황이나 품질에 문제가 없으면 깃발을 꽂아 수매시기에 출하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낙찰자가 품질을 맞추지 못할 경우 계약이 해지되는 데 이때 낙찰자는 총 입찰금액의 10%인 입찰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때문에 수십 년 경력의 산지유통인들은 정부 수매 입찰 시 150~200%의 배추밭을 확보하고 반드시 수매 물량을 맞추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처럼 천재지변으로 모든 밭이 무너져 계약물량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입찰보증금까지 물게 돼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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