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가락시장 시장도매인 도입 신호와 소음 가려낼 때"
[편집자칼럼] "가락시장 시장도매인 도입 신호와 소음 가려낼 때"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12.31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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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양파를 경매하고 있는 모습.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양파를 경매하고 있는 모습.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편집국장] 

악의 축으로 지목되고 있는 플랫폼 경제
 
최근 플랫폼 경제가 주목받고 있다. 플랫폼 경제를 설명하면서 기차역이 언급되는데 수많은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승강장을 빗댄 의미로 사용할 수 있어서다. 플랫폼 경제를 좁은 의미로 해석하면 빅데이터·AI 등 과학기술로 핵심 인프라를 구축해 그 생태계를 활용하는 기업들, 예를 들어 네이버나 구글, 페이스북 등 IT 플랫폼 기업 등이 해당된다. 이들은 플랫폼으로 큰 수익을 창출하는 온라인 기업이다. 지금은 소비자들이 당연시 여기는 배달의 민족, 요기요와 같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는 업체도 마찬가지다.
 
현실계 플랫폼도 존재한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부동산중개업까지 확장시키면 이들도 넓은 의미에서 플랫폼으로 분류된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이 플랫폼 경제와 궤를 같이 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모이는 공간을 제공하거나 중개 수수료로 주머니를 채우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생산자 혹은 중소업체로부터 물건을 매입해 구색을 갖춰 판매하고, 공인중개사는 집을 팔려는 사람들의 매물을 한데 모아 주택 수요자를 중개해 주는 식이다.
 
IT기업이든 오프라인 기업이든 플랫폼 경제는 공격에 시달리기 쉽다. 땀 흘리며 물건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단지 중개만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내가 각종 농자재 비용, 노동을 투입해 배추 한 포기를 생산했다고 치자. 중간에서 전화 한 통으로 거래만 시켜주고 큰 수수료를 독식했다면 "내가 흘린 땀방울과 중개인의 전화 한 통의 가치가 동등한가"라는 의심이 싹틀 수밖에 없다.
 
플랫폼 산업의 공정성 문제는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다. 특히 네이버 뉴스 서비스는 어떤 언론사를 입점해 줄 것인지, 어떤 기사를 상위에 노출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특히 검색창에 검색 키워드를 입력하면 상위에 랭크되는 평가 시스템을 인공지능(AI)이 조율한다고는 하지만 인공지능을 설계한 사람의 손길이 미치는 것 아니냐는 꼬리표를 좀처럼 떼기 힘들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국가에서 만든 공영 도매시장도 똑같은 모습, 꼭 같은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이버에 입점하는 콘텐츠 생산자는 농민에,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한 네이버 포털을 도매시장으로 치환해보면 신기할 정도로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많다. 특히 공영도매시장에서 경매사가 투명하지 않다는 일각의 문제 제기는 네이버 뉴스 평가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와 일맥 상통한다.

 
유통 플랫폼의 공룡화 약자는 생산자다
 
현실계 플랫폼 중에서 도매시장과 경쟁하기도 하고 거래하기도 하는 업태로 대형 할인점이 꼽힌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유통산업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되는데 1980년대만 해도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형마트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 유통산업은 1990년대 이후 역동적으로 발전해 왔고, 소규모 영세 업체들이 난립했던 유통시장에 1990년대 초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등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개혁 작업에 드라이브가 걸리면서 이마트를 비롯한 국내 유통기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들 대형마트로 대표되는 대형 할인점은 당시 농산물 유통산업에 큰 충격을 줬다. 대형 할인점이 한창 성장할 때만 해도 공영 도매시장에서 각종 채소와 과일을 구매했던 대형마트들은 품질을 높이고 유통을 선점하기 위해 직매입을 통해 비용을 절감시켜 나간다. 공영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는 또 하나의 유통 창구가 생긴 셈이다.
 
보통 농산물 유통업계에서 대형 할인점 납품은 근사한 간판이 된다. 모든 제조업이 마찬가지지만 대형마트 납품 이력은 제조업체가 성장하는 데 엄청난 경력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취업 이직 시장에서 대기업 근무 경력이 화려한 이력으로 통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때문에 일부 대형 할인점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 생산자나 납품업체에 과도한 요구를 하기도 하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갑질’로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대형 할인점을 포함해 대부분의 유통 플랫폼이 유통 권력으로 자리 잡는 데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나 한번 자리를 잡게 되면 큰 이득을 올릴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집객 효과만 보장되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생산 업체로부터 과도한 수수료를 챙기기도 하고 할인 판매 등을 강요해 플랫폼의 영업 마진을 높이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민간 유통 플랫폼이 유통 공룡이 되고 나면 영업 이익에 더욱 매진한다. 거대한 조직을 꾸려가거나 사업 다각화를 위해서는 월등한 마진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조업 기반의 유통업은 생산자가 만든 제품의 배 이상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 유통 비용의 기생적 속성 때문이다. 오히려 유통업의 효율이 좋아질수록 유통업의 몸집은 줄어드는 태생적인 한계에 봉착한다.
 
결국 유통은 생산부문과 소비 부문이 크게 성장하지 못할 경우 기업 간 경쟁은 ‘제로섬(zero-sum)’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유통 기업이 쉽게 마진을 얻는 방법은 결국 생산 부문이나 소비 부문으로의 비용 전가를 통해서 이뤄진다. 또한 좀처럼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생산부문을 쥐어짜는 사례가 많다는 점은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와 중소 유통 업체들의 볼멘소리에 귀 기울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농민에게 기준 가격은 최후의 보루
 
농산물은 특이하게도 유통 공룡을 견제하는 결정적인 무기가 존재한다. 바로 기준 가격이다. 국내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도출하는 기준 가격은 전국 어디서나 통용된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선점한 유통 공룡들조차 도매시장에서 도출하는 기준 가격을 무시하고는 협상을 할 수 없으며, 이는 수많은 유통 주체들의 ‘협상 도구’가 된다.
 
민간 플랫폼의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공식이 영업 이익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면 정부에서 관리 감독하는 도매시장, 그중에서도 경매제도는 ‘비싸게 사는 게 미덕’이다. 이는 경매제도를 운용하는 도매시장법인의 수익 구조에서 기인하는데 경매 가격을 높게 받으면 받을수록 수수료로 얻는 수익이 높아지는 속성 때문이다. 
 
즉 경매 가격이 높으면 도매시장법인의 수익이 좋아지고 덩달아 농민의 주머니도 불어난다. 특히 도매시장법인의 제삼자 판매 허용 금지는 민간 유통 플랫폼처럼 마진을 높이기 위해 생산자를 쥐어짜는 행위를 못하게 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경매제도가 그동안 농민을 대신해 가격 협상 대리인으로 자리매김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기준 가격의 발견은 농민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동시에 정부 정책의 수혜도 기준 가격을 통해 현실화된다. 농작물재해보험, FTA피해보전직불, 수매비축지원 등 농민에게 제공되는 각종 정부 집행 자금이 가락시장에서 도출되는 기준 가격을 참고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준 가격은 단순히 농산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주는 역할을 넘어 모든 농업 관련 정책과 예산 집행, 그리고 농민의 삶을 지표로 수치화하는 통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농업의 모든 산업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가격 발견 주체가 중요하다
 
기준 가격이 도출이 중요하다면 가격 발견의 주체가 누가 되느냐는 더욱 중요하다. 투명하고 공정한 가격 발견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이뤄질 것 같지만 가격을 발견하는 주체가 소비자 혹은 유통인에게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면 생산자는 늘 도출된 가격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않는다.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모든 가격을 살펴볼 수 있는 시대라지만, 치열한 유통 현장에서 발견되는 가격은 그야말로 소금 뿌린 장어처럼 꿈틀대 생산자나 소비자가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춤추는 가격 정보는 무한 유통 경쟁시대에서는 엄청난 무기가 되고 유통에서 파생되는 정보 하나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탓에 ICT가 발전한 스마트 세상에서는 거꾸로 기준 가격을 찾는 탐색비용이 올라가는 기현상이 발견되기도 한다.
 
걸출한 가격 발견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농산물 도매시장이나 굳건한 경매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한우시장에서 도출되는 가격은 결국 가격을 발견하는 주체가 소비자나 소매 유통인에게 귀속되지 않기 때문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일부 경매사의 일탈로 ‘공정’과 ‘투명’이라는 키워드에 반론의 여지와 제도 개선이 숙제로 남아있지만 결국 거시적으로 관찰하다 보면 ‘경매 최고가=생산자 이익’이라는 공식에 수렴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도 생산자를 대변하는 안전장치가 없는 플랫폼이 구설수에 휘말리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두에서 설명했던 배달 앱이나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은 민간 플랫폼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유통 권력으로 등극하는 동시에 이익을 독식한다는 세간의 비판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검증은 기본이다
 
그렇다고 경매가 완벽한 제도라는 얘기는 아니다. 생산비도 건지지 못해 한탄하는 농민, 일부 경매사의 일탈로 발생하는 가격 발견의 신뢰도 하락, 반복되는 가격 급등락으로 농민·유통인·소비자에게 시장의 불안정성을 경험하게 하는 일련의 상황은 경매제가 다듬고 보완해야 할 과제다.
 
이 과정에서 거론되는 시장도매인(경매를 거치지 않고 수집과 분산이 허용된 거래)과 같은 거래 제도가 경매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만능 해결사처럼 등장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시장도매인제는 경매제 그리고 도매시장이 가지고 있는 핵심 기능인 ‘기준 가격’ 체계에 ‘계륵’같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모든 거래 제도의 장단점이 존재하는 것처럼 시장도매인의 경우 경매를 거치지 않아 시간을 벌 수 있는 데다가 제삼자 판매를 허용함으로써 소비지 시장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등 장점은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국내 최대 농산물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의 도입 여부는 농민, 유통인, 소비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전략인지는 아직도 면밀히 따져 보아야 할 지점이 많다.
 
실제 두 제도가 병행 운용되고 있는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의 경우 최근 5년간 농산물 취급 물량이 시장도매인은 4.3% 성장했지만 강서시장의 경매제는 2.2% 하락했으며,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 중 강서시장의 2019년 경매 가격은 꼴찌를 차지했다. 품목별로 배추는 32위, 사과는 30위를 기록하는 등 시장도매인 거래가 경매의 기준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복수의 유통 전문가들은 도매시장 개혁과 가락시장 시장도매인 도입을 치환해서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정삼 농림축산식품부 유통정책과장은 “경매제와 시장도매인 병행 시 경매 위축, 기준가격 하락 등으로 농업인의 피해가 우려되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특히 우리나라 대표 시장인 가락시장에의 도입은 강서시장 등에서 시범 도입의 효과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고 있다.
 

거래제도는 인사청문회가 아니다
 
가락시장 시장도매인 도입 문제는 수많은 욕망과 이권이 점철돼 있다. 가락시장에 농산물을 출하하는 농민, 경매를 운용하고 있는 도매시장법인, 경매시장에서 물건을 낙찰받아 소비지에 파는 중도매인, 경매시장에서 농산물을 싣고 내리는 하역 노동자,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 경매를 거치지 않고 유통하는 시장도매인,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파는 직판상인,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매입하는 일선 중소마트, 유통을 연구하는 학계 전문가, 국내 농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 가락시장 개설권자인 서울특별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등이 저마다 치열한 셈법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치권과 일간신문, 공중파 미디어까지 가세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지금의 시장도매인 도입 논란은 마치 정부 고위 공무원 인사 청문회에서처럼 찬반 양측으로 나뉘어 거래제도가 마치 피·아 식별의 도구인 양 전락했으며, 그 자리에 정작 데이터에 기반한 성숙하고 면밀한 숙의과정이 실종돼 있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농민의 삶과 직결돼 있는 거래제도를 밀어붙이기 식 정책 결정으로 되돌이킬 수 없는 농업의 후퇴로 이어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통계학자인 네이트 실버는 ‘신호와 소음(The signal and the Noise)’이라는 저서에서 지금의 시대는 무수히 많은 신호에서 ‘소음’을 가려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시장도매인 도입 문제와 관련해 연구용역, 언론 보도와 칼럼, 기고 등 수많은 정보가 넘실대고 있다. 발전하는 도매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치적 이권이나 조직을 지키기 위한 다툼보다 군살은 쪽 빼고 협상 테이블로 나와 소음은 제거하고 올바른 신호를 선별해 모두가 ‘윈윈’하는 성숙한 숙의과정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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