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설] 농촌의 슬럼화 새해에는 희망 찾기를
[신년사설] 농촌의 슬럼화 새해에는 희망 찾기를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01.01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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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흰 소띠의 해다. 지난해 농업계는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점철됐지만 올해는 상서로움이 가득한 신축년을 맞아 새로운 희망을 품어본다. [사진제공=농촌진흥청]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흰 소띠의 해다. 지난해 농업계는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점철됐지만 올해는 상서로움이 가득한 신축년을 맞아 새로운 희망을 품어본다. [사진제공=농촌진흥청]

신축년이 밝았지만 세상이 온통 깜깜하다. 2020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패닉'이다. 시작부터 꼬였다. 올 초만 해도 활기차고 밝은 미래를 꿈꿨던 많은 사람들이 경자년의 출발을 코로나와 함께 시작했다. 

잡힐 것만 같았던 코로나는 2020년을 통채로 흔들었다. 팬데믹은 우리 사회의 경제, 문화, 정치를 가리지 않고 곳곳을 헤집었다. 경제는 꽁꽁 얼어붙었고, 문화는 발이 묶였으며, 정치는 반목의 반목을 거듭했다. 

농업은 설상가상 각종 재난으로 신음했다. 1년 만에 다시 재발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시작으로 사상 초유의 태풍과 장마,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조류인플루엔자(AI)는 전국의 농촌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지금 농촌의 농민들은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꾸역꾸역 살아 나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농촌의 빈곤이다. 각종 통계들도 농촌의 슬럼화를 입증하고 있다. 

농가인구는 2012년 290만 명에서 2019년 224만 명으로 쪼그라들었고, 농가소득(식량작물) 또한 같은 기간 kg당 96만 원에서 72만 원으로 얄팍해졌다. 

경지면적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농경지는 173만ha에서 158만ha로 15만ha의 토지가 증발하는 등 농업계는 매년 초라해진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이제 농업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믿는 농민은 없다. 농촌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겠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귀농·귀촌 정책도 약발이 다했는지 2016년을 정점으로 귀농 가구원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는 농업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본다. 농업에 막대한 예산을 퍼붓는다는 불평부터 시작해 사회 구석으로 밀려난 산업이라며 천대하고 무시하기 일쑤다. 

정부도 '농업은 미래의 생명산업'이라 한껏 추켜세우지만 각종 무역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가 하면 농업 예산을 깎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각종 국회의원 선거에서 '농업을 보호해야 한다'며 등장하는 캐치프레이즈는 농민들에게는 '위선'에 불과하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은 제19대 대통령 취임 선서식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농업은 제대로 된 스타트라인에도 서보지 못하는 불공정 사회에서 신음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얄팍해진 인심과 사회 곳곳에 쌓은 울분의 민낯을 드러냈지만 공교롭게도 뜻밖의 수확을 거두는 계기도 됐다.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식량에 대한 위기감을 각인시킨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전문가들은 코로나 장기화로 바이러스 위기가 아닌 식량 위기를 경고하자 우리 사회는 농업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농촌 환경에 주목하기도 했다. 비대면 사회의 일상화가 지속되자 코로나블루라는 정신적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 숲의 소중함, 건강한 먹거리 시스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농촌에는 어두운 소식이 한 가득이지만 농촌 사회를 밝혀줄 인재들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농촌을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만들어 농촌의 친근함을 알리는 농민 부부, 사회적 약자들이 숲과 농촌을 경험하게 해주는 사회적 기업, 농촌의 일자리 부족을 외국인 관광객을 활용하는 청년 농부, 첨단 ICT를 활용해 농민들의 농사를 컨설팅하고 판로까지 확보해주는 스타트기업, 농촌의 진솔한 얘기를 유튜브에서 방송하는 유튜버까지. 

고령화로 신음하고 있는 농촌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고수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 농업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재산이다.

2021년 새해 밝은 전망을 할 수 없지만 농업이 받아든 초라한 성적표는 뒤로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전진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2021년은 농업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해로 만들어 보자.

이제 농촌도 더 이상 가난을 무기로 구걸하거나 억대 부농으로 화장하는 일은 그만두고 뜨거운 열정 차가운 이성으로 농업을 디자인해야 한다.

과거 역사를 반추하면 어떤 역사도 스스로 일어나지 않는 사람을 구제해 주지 않았다. 2021년 신축년 우직한 소처럼 농업이 스스로 일어나는 해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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