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오전 9시 설 명절 앞둔 가락동 경매시장···"아! 칼퇴는 글렀다"
[스케치] 오전 9시 설 명절 앞둔 가락동 경매시장···"아! 칼퇴는 글렀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02.04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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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 사전 검수로 
1초경매아니라구!
30년 전문가 수두룩
노련함이 시간 단축
밤낮이 바뀐 사람들
치열한 눈치전 팽팽
경매·중도매·하역 人 
명절 우리식탁 풍성


오전 9시 설명절을 앞두고 가락시장에서 배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오전 9시 설명절을 앞두고 가락시장에서 배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농축유통신문 박현욱·김수용 기자]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국내 최대 공영도매시장인 가락동 농산물도매시장. 보통 직장인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오전 9시는 이곳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퇴근 전야다. 전날 밤부터 시작된 경매는 아침까지 이어지며 물건을 사려는 중도매인들 간의 한바탕 전쟁이 치러지고 하루에만 수 천 톤 분량의 농산물이 수집되고 분산된다.

가락시장 입구부터 인산인해를 이룬 대형 트럭과 지게차들이 복잡하게 꼬인 듯 부드럽게 비껴나가는 게 가히 예술의 경지라 부를 만하다. 복잡한 차들의 동선은 오래 지켜보다 보면 일정한 패턴과 질서가 엿보이고, 좁디좁은 통로도 감탄사가 나올만한 운전 실력으로 통과해 시간을 단축시킨다.

산지에서 농산물을 싣고 수십 시간을 달려온 대형 트럭이 경매장에 도착해 차량의 문이 열리면, 하역인들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경매장에 물건을 내려놓는다. 경매장 바닥에는 수십 톤의 농산물이 사람 키만큼 차곡차곡 하역되고 어느새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넓은 경매장에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쌓인다.
 

가락동 도매시장 경매장에 빼곡히 쌓인 사과·배 등 농산물 모습.
가락동 도매시장 경매장에 빼곡히 쌓인 사과·배 등 농산물 모습.
경매장에서 경매사 호창에 반응하는 중도매인들. 수많은 중도매인들은 상품을 꼼꼼히 확인하고 우량 출하주의 물건이 나올 때 주의깊게 지켜본다.
경매장에서 경매사 호창에 반응하는 중도매인들. 수많은 중도매인들은 상품을 꼼꼼히 확인하고 우량 출하주의 물건이 나올 때 주의깊게 지켜본다.

조금 후 경매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한다. 시끄럽지만 평화롭게 보이는 경매장에는 경매사와 중도매인 간 혹은 중도매인 서로 간의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연신 랩처럼 읊어대는 경매사의 호창이 이어지면 중도매인은 단말기를 눌러대고 눈으로 가늠하기조차 힘든 '광클'질에서 좋은 물건을 확보하려는 초초함이 엿보인다. 물건을 확보한 중도매인은 식자재 마트나 중견 마트에 최상품의 물건을 가져왔다고 너스레를 떨 생각에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살며시 미소만 머금는다.

1초 경매라 비판받는 경매시장은 직접 이곳에 와서 부대끼면 그 말이 쏙 들어간다. 경매 시작 30분 전부터 물건을 살피는 중도매인들은 매의 눈으로 물건을 꼼꼼히 체크한다. 경매사 중 막내 뻘인 경매사가 경매장을 돌며 물건을 ‘언박싱’ 한다. 물건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맛까지 음미하면서 경매장을 한 바퀴 휘돈다.
 

배 경매에 참여한 중도매인들이 낙찰받기 위해 눈치싸움을 벌인다.
배 경매에 참여한 중도매인들이 낙찰받기 위해 눈치싸움을 벌인다.
경매 시작 전 한 중도매인이 물건을 살펴보는 모습.
경매 시작 전 한 중도매인이 물건을 살펴보는 모습.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산물 중 최고의 상품은 농산물 유통의 메이저리그인 가락시장에 출하돼 족히 30년 이상 된 전문가들의 눈도장을 받는다. 보통 야구계에서 좋은 기량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을 때 몸값이 치솟듯 이곳 가락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속박이 없고 매끈한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출하하는 출하주는 경매사와 중도매인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는다. 경매장 모니터에 출하주의 이름만 나와도 중도매인들의 단말기 누르는 속도부터 다르다. 농민의 이름 석 자가 브랜드가 되는 순간이며, 도매시장의 스타 농부가 탄생하는 때다.
 

사과 경매 전 하역인들이 하역하는 모습.
사과 경매 전 하역인들이 하역하는 모습.
경매가 끝나고 지게차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경매가 끝나고 지게차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치열한 경매가 끝이 나면 이제부터는 지게차 세상이 된다. 모세혈관처럼 흩어져 있는 서울 각지의 슈퍼마켓이나 중소마트, 식당으로 나가기 위해 경매장에서 낙찰된 농산물들은 지게차에 지칠 줄 모르고 실려 나간다.

일부 조기 퇴근한 중도매인들은 근처 매점에 들러 허기를 달랜다. 라면과 김치찌개, 제육볶음 등 매점 주인의 넉넉한 인심이 밥상에 오르고 뜨거운 김 호호 불며 퇴근의 달콤함을 만끽하던 그들은 아쉬운 마음에 한 마디 덧붙인다.

“여기 소주 한 병이요.”

그러면서 “30년 이상 유통해봤는데... 나 때는 말이야.” 이곳에서도 똑같이 ‘라떼’타령이 나올 참이면 밤낮이 바뀐 거꾸로 된 시간 속을 살아가는 가락시장의 아침이 조금씩 저문(?)다. 때마침 경매장에는 설 명절을 앞두고 밀려드는 사과 물량에 경매시간 1시간 지연을 알리는 방송이 스피커에서 울린다.

“아! 칼퇴는 물 건너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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