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영도매시장은 실험을 위한 마루타가 아니다
[사설] 공영도매시장은 실험을 위한 마루타가 아니다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04.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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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조만간 도매시장 이용에 대한 대국민 의견수렴 결과를 발표한다. 그동안 도매시장에 쌓였던 불만이 이번 조사에 담겨 오는 6월 발표되는 도매시장 유통구조 개선방안에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설문조사 결과를 대략 예상해 보자면 도매시장에 대한 가장 큰 불신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가격 편차에 대한 리스크 분배와 도매시장 이익 구조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다. 힘들게 생산한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할 때 생기는 불신이며, 또 하나는 가격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도매시장법인에 귀속되지 않는 구조에 대한 불만이다.

농민들이 상장한 농산물이 경매되면 수수료만 챙기는 도매법인의 수익 구조에 대한 비판인데 최근 유통업계에서 이슈가 되는 플랫폼에 대한 불신과 꼭 닮았다. 즉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도 수수료는 발생해 항상 이익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공영도매시장은 정부의 예산이 수반되므로 도매시장법인은 늘 공공성이라는 숙제를 부여받는다. 그동안은 출하 장려금 지급으로 농민들을 지원하거나 사회 공헌 활동 등으로 대신해 왔지만 이제는 더 큰 공공성에 대한 요구를 받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기금을 조성해 가격 변동 리스크를 헷지할 수 있는 방안이나 전담 정가·수의매매 경매사를 기용해 가격 변동을 최소화하라는 것이다.

일부 농민단체에서는 더 큰 변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도매법인의 체질 개선보다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해 도매시장을 경쟁 체제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농민들의 출하 선택권을 보장하고 물류 효율화를 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도매인의 성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국내 시장도매인은 선진국의 시장도매인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시장도매인이라 함은 스스로가 농산물 매입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지만 국내의 경우는 위탁판매를 허용해 주면서 리스크를 줄여주는 예외를 적용해 줬다. 강서시장에 시장도매인 도입 당시 영세한 영등포 상인들의 편의를 봐준 것이다.

당시 정부는 시장도매인에 국내산 농산물의 매입 판매량을 높여 시장도매인의 본연의 역할인 농민의 출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문을 했지만 도입 1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국산 농산물 매입 판매 비율은 34%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시장도매인이 도입된 강서시장 경매 가격은 32개 공영도매시장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시장도매인과 중도매인 간 불법 거래, 수입 농산물의 높은 거래비율 등 우려되는 지점이 아직도 많은 게 현실이다.

최근 한 농민단체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넣으며 국내 최대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금의 도매시장에는 진정 변화는 필요한 시점이지만 아직도 누수가 발생하는 거래 제도로 실험을 해보자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도매시장 특히 가락시장은 농민뿐만 아니라 국내 농산물 유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검증에 검증을 거쳐 완벽하게 평가받던 제도도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방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공영도매시장의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제도를 일부 농민단체의 주장처럼 스스로 실험의 장으로 바꿔야 한다는 발상이 모든 농민의 이익으로 귀결될지 의문이다.

공영도매시장은 실험을 위한 마루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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