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픽업 가락시장-편집자 칼럼] "공영도매시장 유통구조 농민 호주머니와 직결···숙의 필요"
[뉴스픽업 가락시장-편집자 칼럼] "공영도매시장 유통구조 농민 호주머니와 직결···숙의 필요"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06.17 15: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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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 편집국장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경매하는 모습.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경매하는 모습.

"거래 제도가 뭔지 몰라요. 농민들은 유통인들 밥그릇 싸움에는 관심 없죠. 우리가 출하한 농산물이 제값 받는 도매시장을 원할뿐이지." 지난 10일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야당 간사인 이만희 의원실에서 주최하고 농축유통신문이 주관한 '공영도매시장 기능 안정화 방안 정책 토론회'에서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 패널이 한 말이다.

농민 입장에서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당한 얘기다. 대다수 농민들은 도매시장 거래 제도가 어찌 됐는 상관없다. 단지 자신이 힘들게 생산한 농산물이 언제 어디서나 합당한 가격에 팔리는 것을 희망할 뿐이다. '합당한'이라는 단어가 애매하다면 생산비를 보전하고도 마진을 남기는 수준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마진의 수위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물론 마진이 높으면 높을수록 감사한 일이다.

도매시장 경매에 부쳤는데(상장시켰는데) 형편없는 가격이 나오자 실망스러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다시 산지로 유턴했던 기억. 농민이라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경매사에 대한 불신도 팽배할 것이고, 경매 가격이 일방적인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불합리하다는 의혹에 밤잠을 설친 농민들도 있다. 자신이 피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이 인기투표처럼 등수가 매겨진다면, 그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없다면, 그건 AI 로봇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AI가 아닌 인간인지라 항상 농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소위 모범생을 자처하는 농민도 망할 때가 있고 풍년이 과할 때도 있다. "빌어먹을 풍년 같으니라고"라며 푸념하는 것처럼 과한 풍년을 달가워하는 농민은 사실상 전무하다. 풍년이 지나치면 내 호주머니는 밥 먹듯이 거미줄을 친다. 공급량이 넘쳐 가격이 곤두박질쳐서다.

아이러니하게 흉년에 잘 짓는 농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거꾸로 공급량이 부족한 탓이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통용되는 시장, 천수답 농업이 가지는 약점, 비탄력적 농산물 유통시장이 가지는 맹점이다. 이상하게도 내가 잘 지으면 다른 이도 잘되고 내가 망해도 다른 이는 잘 되는 것 같다.

비단 농사뿐이랴. 학창 시절 성적표를 떠올리면 어땠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농사와 성적은 전혀 다르다. 사람의 심리만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니 오해는 금물.

무슨 말인지 정리해 보자면 "그냥 농사는 어렵다"는 얘기다. 내 자식이 어디서 후려침 당하면 열받는 건 인간의 정상적인 반응이다.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농사짓는 농민이 딱 그 심정이다. "도매시장이 우릴 후려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럼 도매시장이 없는 시장을 가정해보자. 당신이 농민이라면 어디에 팔까. 도시에 거주하는 지인들부터 구슬릴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직거래다. 믿을 수 있는 농민(지인)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지인)까지. 주위에 지인투성이라면 마음으로만 가격을 지불할 수 있으니 일단 조심하자.

지인에게 다 팔아도 남는 게 농산물이다. 지인 찬스에도 한계가 있다. 이제 누군가에는 팔아야 하는데 딱 좋은 유통인이 눈에 어른거린다. 밭떼기 상인이다. 이들은 척하면 척이다. "얼마에 줄게 넘겨요. 아 형님. 그 가격에는 어디서도 안 받아준다니께."

어찌나 입심은 좋은지 초보 농민이라면 초가삼간 다 줘야 할 것처럼 그냥 홀린다. 밭떼기 상인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만 이어져서 그렇지 이들은 사실 농민들에게 엄청난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심지어 파종부터 수확까지 죄다 도맡아 스스로를 농민이라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농민은 유통인들에게 언제나 '을'이다. 밭떼기 상인의 최대 강점은 정보력이다. 소비지의 가격 변동과 산지의 농산물 품질을 기가 막히게 저울질해 농민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간혹 농민이 갑이 되는 경우가 있다. 생산량이 떨어져 물량이 크게 부족하거나 수많은 밭떼기 상인들끼리 출혈 경쟁을 벌이거나.

엄청난 물량을 생산하는 공룡 농부라면? 게다가 품질까지 '엄지 척'이라면. 이마트나 롯데마트, 홈플러스 같은 대형 마트 바이어가 목숨 걸고 달려들 것이다. 사실 우량 농민은 도매시장 유무와 상관없이 잘 살고 잘 번다. 우리보다 잘 사는 전국 1% 소득을 누리니 걱정은 그만하자. 연예인 걱정만큼 부질없는 일이다. 정작 걱정은 영세한 대다수의 농민들이다. 지인 찬스, 밭떼기 상인도 없다면. 그야말로 대략 난감이다.

때문에 도매시장은 농민들에게 유통이라는 상징성을 넘어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중요한 시장이다. 일단 생산만 하면 딴 생각 하지 않고 출하가 가능하다. 농안법에 명시된 '수탁 거부 원칙'은 농민들이 출하한 농산물을 도매시장법인이 거부하지 못하는 안전장치가 있다. 때문에 전국의 농민들은 가격이 잘 구현되는 가락시장이라는 메이저리그 도매시장에 진출하고자 노력한다.

문제는 춤추는 가격이다. 최근 일부 언론은 가락시장 가격 편차의 원인으로 도매시장법인의 독점을 지목했다. 경매제도가 가격을 후려치는 제도로 변질됐다고 주장하는 한 단체의 입을 빌리기도 했다. 해법으로는 농민과 도매상이 직거래하는 '시장도매인'으로 귀결됐다. 결국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을 도입, 유통인들의 경쟁을 통해 농민의 안정적인 수취가격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 보도의 골자다.

결론부터 말하면 도매시장 구조의 몰이해와 극단적인 예만을 활용한 반쪽짜리 보도들이다. 일단 공영도매시장의 설립 취지를 생각해 보자. 공영도매시장은 설립 당시 정보력이 약한 농민들을 대변해 도매시장법인이라는 대표 선수를 기용했다. 소비지의 대표 선수는 중도매인. 이들의 치열한 샅바싸움이 국내 농산물 대표 가격을 결정한다.

도매시장법인의 수익은 농민이 경매에 상장해 낙찰받은 금액의 약 4~7%를 수수료로 받는다.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낙찰금액을 높게 받아야 하며, 도매시장법인에 귀속된 경매사는 가격을 높게 받기 위해 노력한다. 이론적으로 한 도매시장법인이 7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면 93억 원은 농민에게 귀결된 셈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익을 보는 농민이 있는가 하면 손해 보는 농민도 있다. 극단적으로 손해 보는 농민의 예만 들면서 근거로 삼는 것은 통계를 분석하고 뜯어보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다.

해법으로 제시한 시장도매인의 거래 방식도 살펴보자. 이들은 산지에서 물건을 사고 소비지에서 판 차익으로 이익을 실현한다. 이들이 누구의 대표 선수인지 애매모호하지만 농민의 대표 선수가 되기에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시장도매인도 농민에게 위탁수수료를 받긴 하지만 생산자보다 거래 교섭력이 높은 소비지와 긴밀한 관계를 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매수거래의 경우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게 미덕이다. 심지어 소비지에서 거둔 차익은 공개할 의무도 없다.

결국 가격발견을 하는 가락시장에 두 제도가 도입된다면 엄연히 스타트라인이 다른 경쟁이 된다. 현재 두 제도가 병행돼 운용되는 강서시장은 경매가격이 전국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거래 제도 논쟁이 계속되고 제도에 반영된다면 피해는 결국 농민에게 부메랑처럼 돌아갈 우려가 크다.

그렇다고 경매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경매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정가·수의매매를 독려했음에도 그동안 도매시장법인들이 소홀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지금 불거지고 있는 문제들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공영도매시장의 설립 취지 근간을 뒤흔드는 제도 도입은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서두에 언급했던 "농민들은 유통인들의 밥그릇 싸움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지금의 거래 제도 논쟁이 공영도매시장의 근간을 흔들게 되면 농민들의 호주머니만 홀쭉해지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문제가 불거질 경우 제도 개혁을 외치는 농민단체, 이를 옹호하는 언론, 여기에 편승한 서울시공사 중 누가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차분한 숙의과정이 필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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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21-06-24 21:01:39
좋은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