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트렌드] 더불어 사는 축산 농장의 진화···취약 계층 정조준
[농장 트렌드] 더불어 사는 축산 농장의 진화···취약 계층 정조준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08.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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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구 비아농장 대표

치유농장 실험 중 노동의 중요성 일깨워
국내 축산 농장 사회적 책무 재정립 필요


박홍구 비아농장 대표.
박홍구 비아농장 대표.

코로나19로 치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자연과 가장 접점이 많은 농업 분야는 지친 사람들의 심신을 위로해 주는 도구의 하나로 주목받으면서 치유를 슬로건으로 내건 농장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특히 축산분야에서는 환경문제 등 사회적 책무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생산성을 위주로 운영하던 방식은 접고 주위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는 농장들도 많아지고 있다유럽에서는 치유를 테마로 한 농장을 비즈니스 모델로 승화시키며 다양한 콘텐츠로 승부하는 농장이 인기를 끈다국내에서도 더디긴 하지만 치유 농장에 대한 실험들이 전국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경상북도 성주에서 한우 120 두를 키우고 있는 박홍구 비아농장 대표도 치유 농장을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박 대표는 일반인들에게 힐링을 줄 수 있는 단순한 개념의 치유농장이 아닌 사회적 취양 계층까지 품는 진정한 의미의 치유농장을 운영 중이다. 농축유통신문이 치유농장의 테스트 베드인 비아농장을 찾았다. <편집자 주>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기자] 

노동의 가치 일자리 중요성 깨달아
축산 농장 더불어 사는 창구 될 수 있어
 
"사회적 취약계층 중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안전한 생활 반경, 잘 갖춰진 의식주도 중요하죠. 하지만 그들이 일을 하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생산성을 요구하는 시대에는 더욱이요."

박홍구 대표는 취약계층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평소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에게 치유농장은 늘 로망과도 같은 존재였다. 박 대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구로 축산 농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품어왔다. 농업이 사회적 문제까지 해결한다면 소외받고 있는 농업에 더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이 생겨날 것이란 믿음에서다.

"몇 년 전 노르웨이에 있는 축산 농장을 견학한 적이 있어요. 깜짝 놀랐죠. 치유농장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는데. 일반인들에게 돈을 받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장애인들에게 일을 시키고 비용까지 받는다는 거예요. 비용을 지불하는 게 아니라 받는다니. 실현 가능한 일인가. 의아했죠. 얘기를 들어보니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는 희소하고 일자리를 통해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아. 국내 축산 농장도 더불어 살 수 있는 창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무릎을 탁 쳤어요."
 

장애인 고용 진정한 치유 농장 실험
노동의 가능성 증명하는 농장 될 것
 
박 대표는 평소 친분이 있던 복지 시설 대표와 자신의 생각을 나눴다. 해당 시설은 장애인들의 생활 전반을 책임지고 있었고, 박 대표는 그들 중 몇 명을 축산 농장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고용했다. 업무 시간도 최소한으로 했다. 하루 1~2시간가량을 축산 농장의 허드렛일을 맡기고 조금씩 농장 일의 업무를 넓혀갔다. 

물론 쉽지 않았다. 평소 해보지 못한 생소한 일에 노출된 그들은 적응 속도가 매우 느렸고, 불평불만도 있었지만 농장 일이 익숙해지고 보람을 느끼기 시작하자 태도 또한 바뀌기 시작했다.


“사실 굉장히 민감할 수 있는 이슈죠. 노동 착취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 스스로 농장 일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한정되다 보니 노동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귀찮음’으로 치부될 때가 많거든요. 노동은 자신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 상승은 물론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는 일이 될 수 있거든요. 비아농장에서 노동의 신성함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이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하고 싶었죠.”
 
취약계층에 노동 환경 보장해야
축산업의 사회적 역할 정립 필요
 
한우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제때 사료를 주고 농장 환경을 깨끗하게만 조성해 주면 스스로 성장하는 것처럼 오해하지만 그 어떤 산업동물보다 한우는 민감한 동물에 속해 농장주의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농장주의 기분이나 평소 사료를 주는 버릇 하나 바뀌어도 금세 알아챌 뿐만 아니라 농장 시스템의 미세한 변화가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때문에 동물들의 기분까지 배려하고 대응할 수 있는 섬세한 사육이 중요하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많은 농장들이 숙련된 일꾼을 선호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때문에 많은 농장들이 좋은 취지에서 체험 농장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동물들의 스트레스 때문에 접는 일이 허다하죠. 비숙련 노동자들과 농장 일을 하는 것이 힘든 이유입니다. 장애인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죠. 그런 일을 감수하면서까지 철학만 앞세우면 힘들 수밖에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에게 치유농장은 미래 축산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감수해야 할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축산 농장에서 장애인들에게 적합한 노동 환경을 보장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비난 대상이 되고 있는 축산 농장이 거꾸로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축산업에도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죠.”
 

노동이 심리적 안정까지 가져와
공동체 함양 가능한 한우산업 기대
 
현재 박 대표 농장에는 두 명의 장애인들이 한우 사육을 돕는다. 사교성이 부족하고 사료 하나 옮기기에도 부족한 체력에도 세 달 남짓한 이곳에서의 경험이 건강한 육체와 안정된 정서를 만들어주고 있다. 제법 박 대표와 친해진 그들은 "대표님은 쉬라면서 하라"는 이야기도 먼저 꺼내기도 한다.

장애인들에게는 산책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운동능력을 회복하고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데 산책과 같은 운동만큼 적합한 활동은 드물다.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한정돼 일반인들과 같은 운동 능력을 갖춘 성인은 손에 꼽는데 이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한 탓이다.

"사실 치유 농장이 쉽지 않은 일이죠. 비아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일도하고 일정 부분 급여도 받고, 일이 끝나면 복지 시설로 돌아가는 산책도 하게 됩니다. 복지시설 원장님도 농장에서 일을 하고 난 후 그들이 웃음을 찾았다고 피드백 해주기도 합니다. 이들이 한우 농장에서 찾는 건강한 웃음은 치유농장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생각해요. 한우 산업 곳곳에는 세상과 함께할 수 있는 보석 같은 요소들이 숨어 있어요. 이제는 그것들을 발굴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발전한다면 미래 축산으로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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