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초라한 농업 예산과 기획재정부의 역할
[사설] 초라한 농업 예산과 기획재정부의 역할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1.12.10 0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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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농업 예산이 확정됐다. 16조 8,767억 원으로 역대 최고다. 하지만 국가 총예산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내년도 국가 예산은 600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 604조 4,365억 원으로 이중 농업예산 비중은 2.8%에 불과, 3%의 턱걸이조차 하지 못했다.

예산 증가율과 비교해도 초라한 성적이다. 국가 총예산은 올해 예산과 비교해 약 9%나 늘었는데 이중 농업 예산 증가폭은 3.6%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2천억 원가량 순증한 것이라니. 정부가 한 산업을 대하는 태도의 바로미터가 예산임을 고려할 때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예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는 부처는 기획재정부다. 기재부는 국가의 모든 예산을 관장, 정밀하게 설계하고 적절한 곳에 집행하는 한 나라의 총무 역할을 한다. 때문에 늘 예산 문제와 관련해 부처 사이에서 입방아에 오른다. 곳간 열쇠를 쥔 놈이 대장 역할을 한다더니 딱 그 짝이다.

농업계도 예외 없다. 기재부의 힘은 농촌 밑바닥까지 영향을 미친다. 농업계에서 이뤄지는 모든 간담회에서는 어느 순간 기재부가 논의 테이블에 오른다. 정부의 사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추진 주최나 이해 당사자들은 '기재부를 설득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사업을 시행하는 대의나 취지는 사라지고 결국 기재부의 허락을 구할 수 있느냐로 귀결되는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국가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업에 예산을 집행, 적절하게 사용되는지 면밀히 검토하는 예산 서포터스 역할에 국한돼야 한다. 물론 국가 예산이 함부로 남발되는 사업에 제동을 거는 일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나 지금처럼 정부 내 공룡 부처가 돼 모든 일에 딴죽을 거는 듯한 인상을 줬다면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증거다.

오죽하면 기재부 외 부처 공무원들이 '기재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거나 '기재부 허락이 필요하다'라는 해명 아닌 해명을 들어야 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발생한다는 소문이 돌 수 있나. ‘국내 모든 정부 사업은 기재부 입맛에 맛도록 사업 설계를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우스갯소리만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국가 예산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국가다운 국가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수반돼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 올바른 재정 사용의 권한이 기재부에 위임된 것이다. 위임된 권한이 권한을 넘어서 함부로 남발되면 정부 정책의 취지나 효용에 대한 치열한 논의의 장은 사라지고 결국 재정을 위한 재정이 되고 만다.

특히 농업 관련 예산은 수치로 재단할 수 없는 사업과 정책이 많다. 지금 당장 효과를 측정할 수 없으나 농업·농촌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 비전을 가진 것들이다. 수치만을 들먹이며 사업 실효성만을 따진다면 결국 농업에서 할 수 있는 정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내년에도 농업계에는 수많은 정책과 사업이 기다리고 있다. 충분한 숙의 과정과 치열한 논쟁은 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대의에서 출발해야 하며, 국내 농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비전에서 찾아야 한다. 이 같은 과정이 활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재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제 더 이상 부처 위에 군림하려 들지 말고 국가를 위한 예산 검증과 지원에만 충실히 골몰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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