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공사의 ‘불통즉통’ 기자간담회
서울시공사의 ‘불통즉통’ 기자간담회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4.10.30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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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허준이 지은 의서 동의보감에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란 말이 있다. 통할통(通) 자와 아플통(痛) 자를 조합해 ‘통하면 아프지 아니하고 통하지 아니하면 아플 것이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말은 압운(라임)도 압운이지만 우리 사회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통찰도 녹아 들어있다.

최근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올해 6월 새로 부임한 공사 홍보팀장은 이제까지 얼굴을 익히는 자리만 됐던 간담회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주제를 가지고 이런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건설적인 생각에 내심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공사가 나서서 소통하겠다는 얘긴데 어떤 기자가 마다하겠는가.
 
이번 간담회에서 공사는 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가락시장 시설현대화 1단계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이 사업은 7000억원이라는 국민세금이 들어가는 엄청난 사업이다. 총 3단계 사업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1단계에만 3035억원이 쓰였다. 그런데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주제만 있고 소통은 없었다.
 
엄청난 세금이 들어간 사업인 만큼 공사의 수장이 나와 출입 기자들의 비판도 수용하고 검토할 것은 검토하는 자리가 됐어야 했다. 애초에 그런 기대를 접은지 오래지만 이날 그나마 참석한 본부장마저 인사말만 남기고 간담회 내내 자리를 비웠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설현대화 사업에 대한 논란을 의식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간담회 주최자들은 공식적인 질문 시간도 없애버리고 서둘러 공사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후 4시 15분경 시작된 간담회는 공사 직원들의 시설현대화 사업 추진현황에 대한 설명을 끝내고 현장을 둘러본 뒤 저녁 식사자리로 향하며 마무리 됐다. 식사자리에서 공식적인 질문을 했어야 한다면 시간이 없어 그 자리에 참석을 못했던 기자의 잘못임을 시인한다. 그러나 7000억원이라는 국민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건전한 비판과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기자간담회의 본래 취지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설명자료는 미리 배포하고 기자들과의 진지한 소통을 했다면 공사 홍보팀의 ‘좋은 의도’는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자가 사전에 자료를 검토하기 위해 당일 오후 홍보팀에 전화해 자료를 요청했더니 공사 직원은 ‘오셔서 받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가락시장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공사에 대해 한결같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지 절실히 깨닫는 기회가 됐다.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라는 허준이 말처럼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은 소통이 없다면 잡음이 커질거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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