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화되는 TPP, 농업계에 미칠 파장과 대응방안은
가시화되는 TPP, 농업계에 미칠 파장과 대응방안은
  • 박현욱 기자
  • 승인 2015.11.06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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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농민 목소리 외면한 정부···일부 언론 TPP 옹호여론 조성
TPP 규정, 농식품 수출업체에 보조금 지원불가 명시
농민단체, 품목간 반목 멈추고 결속 다져야 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를 공식화했다. 지난 10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TPP 참여 의사를 밝히는 한편 11월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 자리에서도 아베 총리에게 TPP 참여를 시사했다.

10월 5일, 미국·일본 등 12개국이 참여한 대규모 무역협상이 타결되면서 한국 정부는 팔짱을 끼고 관망했던 자세를 풀고 막내린 협상 테이블에 뒤늦게 기웃거리는 모양새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수많은 국가(54개국)와의 양자자유무역협정(FTA)을 목표로 각개전투를 벌였다면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단 한 번의 승부수(TPP)를 띄움으로써 거대 무역전장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세계 경제 흐름이 바다를 넘나드는 무역전쟁으로 점철되면서 내수시장이 취약한 우리나라는 폭넓은 개방이라는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이에 정부에서는 TPP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여론몰이에 나서고 TPP 참여에 있어 내줘야할 카드로 분류되고 있는 농업계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미 농업계는 개방여부에 대한 반발보다 개방폭에 대한 셈법에 골몰하고 있는 안타까운 일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공허한 외침 농민 목소리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 정부는 농업을 터부시했다. 겉으로는 식량안보를 외치지만 실제로 정부가 집행하는 예산 규모를 따져보면 농업에 대한 투자가 미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년도 농림수산분야 예산은 19조3000억원으로 올해 예산에 비해 고작 0.1% 증가했으며 농림축산식품부 예산도 12조2800억원으로 올해와 비교해 1.7%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는 국가 전체 예산 증가율인 3.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며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를 기록하면서 매년 감소 추세다.
 
농업에 대한 몰이해는 정부의 예산 운영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부는 16년도 예산을 편성하는 데 있어 정보통신기술 융·복합과 전문 인력 양성, 농식품 수출시장 개척 등에 집중했다. 농업계가 요구했던 무역이득공유제 도입 등은 빠져있고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줄기차게 요구했던 기초농산물국가수매제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수많은 FTA로 극심한 몸살을 앓은 농업계가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중국과 베트남 두 나라와 FTA를 맺으면 향후 20년간 국내 농가에 미치는 피해액 규모가 2000억원 이상일 것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는 매년 쏟아지고 있지만 무역에서 발생하는 이득에서 농업은 언제나 제외됐다.
 
정부가 시장개방을 외치며 표방하는 ‘위기는 곧 기회’, ‘개방은 농업의 또 하나의 가능성’이란 구호도 농민들에게는 더 이상 감흥조차 줄 수 없게 됐으며 이제는 코 앞까지 다가온 TPP에 대해 반대할 동력조차 잃었다.
 
한국, TPP 가입 목전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TPP 가입이 필수라고 얘기한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전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TPP는 매력적인 시장일 수밖에 없어서다. 단기적 성과에 목을 매고 있는 정부로써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더 이상 TPP는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되는 경제성장의 해법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시장개방에 관해서만큼은 농민들의 여론을 묵살해왔다. 쌀 시장 개방과 뉴질랜드, 캐나다, 중국, 베트남 등과의 FTA도 큰 어려움 없이 밀어붙였다. 농업계 내부의 반목도 개방농정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됐지만 결국 개방만이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기조가 국내 농업 빗장을 풀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 TPP 가입은 시기의 문제가 아닌 개방폭에 대한 논의로 옮겨갈 것으로 보이며 국내 농업은 완전 개방시대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TPP 가입의 최대 난관이었던 중국도 불과 2년 전만하더라도 한국이 TPP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나 이제는 인정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지난 9월 박 대통령은 중국의 리커창 총리를 만나 한국이 TPP 가입을 추진한 배경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외교환경을 변화를 보여준 예다.
 
TPP 입장료 결국은···관세철폐·감축·TRQ 할당
 
TPP 가입이 불가피하다면 개방폭은 어떻게 될까.
일본은 TPP에 가입하기 위해 대부분 품목에서 관세를 감축하고 철폐하는 입장료를 지불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 언론에 TPP 가입을 알리고 자국 내 ‘5대 민감품목’에 대해서만은 개방폭을 최대한 줄였다고 발표했지만 이 중 쇠고기와 돼지고기, 유제품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감축에 합의했다.
 
쇠고기는 현행 38.5%의 관세를 TPP 발효 즉시 27.5%로 줄이고 이후 1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9%까지 감축하기로 했다. 돼지고기도 품질에 따라 관세를 차등 감축하거나 완전히 철폐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쌀은 현행관세를 유지하는 대신 미국에게 TRQ(저율할당관세, 정부가 허용한 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저율관세 부과, 초과하는 물량은 높은 관세를 매김)를 추가 제공키로 했다. 발효 첫해에는 5만톤, 13년차에 들어서는 7만톤 규모이며 호주산 쌀도 8400톤을 더 할당했다. 낙농의 경우 전체 낙농품 생산의 3.25%를 수입하기로 했으며, 치즈 중 일부 제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고 탈지분유 버터에 TRQ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후 일본정부는 국익에 부합하는 최선의 협상결과를 이끌어 냈다는 점을 강조하고 올해 10월 쌀 생산농가 보호를 위해 TRQ물량인 7만톤 규모의 자국쌀을 정부비축미로 매입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민심을 달랬다.
 
일본은 TPP 출발국으로서 민감품목 개방 최소화에 역점을 두며 이번 합의가 아쉽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결국 피해는 일본 농가들이 본 셈이 됐다.
 
TPP가입, 농산물 수출에도 ‘빨간불’
 
관세문제 이외에도 일본의 TPP 가입에서 주목해 볼 점이 있다. 농산물 수출을 활성화 하기위해 일본 정부가 수출업체에 지원했던 수출보조금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TPP 규범에 수출보조금 채택이나 유지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이는 TPP 가입 시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여 수입물량 증가는 물론 수출에도 큰 난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현재 수출물류비 지원에 있어 상당부분을 정부 보조금의 의존하고 있는 농식품 수출기업뿐만 아니라 일선 영농조합, 농업법인 등의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또한 일본은 수출에 대한 권리제한(수출독점권 철폐)과 수출 국영무역기업에 대한 특혜나 금융지원이 사라지고 수출 국영무역기업의 운영과 유지에 관한 투명성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TPP는 국내 농산물 수출에 막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매년 농식품 수출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정부가 반영하는 예산에 세부계획에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수출예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융자지원에 대한 부분도 수정돼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
 
농업계 대응··· “이제는 한 목소리를 내야할 때”
 
그동안 농업계는 시장개방에 끊임없이 반대해왔다. 그러나 항상 승자는 정부였다. 최근 들어 모든 정책은 정부의 논리대로 흘러가고 농민들의 의견은 반영해주면 감사하다고 절을 할 정도다. 피해는 농민이 보고 생색은 정부에서 냈다.
 
농민단체들의 의견이 그나마 잘 반영되는 시기도 있었다. 반대가 극렬했던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나 한·칠레 FTA, 한·미 FTA 협상에서는 한 목소리를 냈던 농민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많은 투융자사업과 제도개선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농민의 힘은 빛을 바랬다. 중구난방 식의 정책제안과 이해가 엇갈리는 품목단체들이 중지를 모으지 못하면서 농민들 스스로 단결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를 교묘히 이용하면서 일부 농민단체들에게는 당근을 제시하고 일부 농민단체는 소외시키는 등 한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일부 개혁적인 농민단체들의 반대를 일부의 주장으로 폄하하면서 농민단체 간의 분란을 조장한 측면도 있다.
 
TPP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단체가 결속과 협력에 방점을 둬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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