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집] 현장에서 듣는 청탁금지법
[창간 특집] 현장에서 듣는 청탁금지법
  • 김지연 기자
  • 승인 2017.03.3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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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백화점 설 선물 전년대비 25% 감소

[현장에서 듣는 청탁금지법]

딸기·토마토 등 작목 전환하는 화훼농가 속출

쌓여있는 사과박스, 위기에 직면한 ‘충주사과’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농축산업계 피해가 현실로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첫 명절인 올해 설 선물세트 판매감소율을 적용한 결과 소비위축에 따라 감소액은 품목별 3~7%에 달했다. 한우의 생산 감소액이 2286억원으로 가장 컸고 과일이 1074억원, 화훼가 390~438억원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6일 화훼 소비 감소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화훼류 소비 활성화 추진계획’을 수립, 발표했다. 그러나 곳곳의 현장에서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창간 28주년을 맞이해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현장 피해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화훼 거래 28% 감소…소비 활성화 추진계획 수립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용선 박사가 발표한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농축산업 및 외식업 파급영향’에 따르면 설 명절 전 4주동안 백화점 3개사(신세계·롯데·현대), 대형마트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농협하나로유통 등 소매유통업체들의 농축산물 선물세트 판매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대비 25.8% 감소했다. 특히 국내산 쇠고기 선물세트 판매는 2016년 824억9600만원에서 올해 623억4700만원으로 24.4% 줄었고 과일 판매액은 지난해 761억1400억원에서 올해 524억8800만원으로 3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5만원 이하 금액대 비중이 20165년 23.2%에서 올해 26.1%로 증가했으며 이 중 수입 비중은 3.7%에서 5.5%로 증가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농축산물의 도매 및 산지가격 동향도 모두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한우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도축물량이 전년 동기간보다 7.1% 감소했지만 가격은 9.6% 하락해 도매거래액은 16.1% 감소했다. 도축량 감소와 수입육 증가 등 가격 변동 요인을 고래해 분석한 결과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8.8% 각겨 하락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분화류 역시 출하량이 지난해보다 11.2% 감소했지만 소비 위축으로 가격은 13.2% 하락했다. 분화류 중 특히 선물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난류의 타격이 가장 심각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거래금액이 24.3% 감소했다. 사과와 배 역시 올해 1월 가락시장 거래량이 지난해보다 28.7% 감소했지만 가격은 16.3% 하락했으며 배는 1월 평균단가가 지난해보다 34.6%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지난달 6일 농림축산식품부는 화훼 소비감소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화훼류 소비 활성화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직매장 내에 화훼 판매코너 설치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30개소에서 올해 373개소로 10배 이상 늘리고 일상 속에서도 꽃 소비를 생활화할 수 있도록 ‘1 테이블 1 플라워’ 운동을 범국민 차원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사과산업 ‘직격탄’

청탁금지법으로 과일 중 제일 타격을 많이 받은 것은 바로 사과. 충주를 대표하는 과일인 사과가 위기를 맞고 있다. 충주시 금가면 충북원예농협 거점유통센터 앞에 사과 수천박스가 쌓여 있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사과가 아직까지 창고 한 가득 쌓여있기 때문이다. 충주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가는 저온 창고를 볼 때마다 화병이 걸릴 지경이라며 예전에는 이쯤되면 창고가 비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팔리지 않은 사과로 꽉 차 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헐값에라도 팔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일시적인 소비촉진보다는 장기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충주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충주지역 사과 재고량은 평년보다 400톤 이상 증가했으며 충북원협 AP C를 비롯한 농협 재고는 3063톤, 일선 농가의 재고는 1008톤에 이른다.

값싼 수입농산물과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사과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청탁금지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6만원이 넘는 10kg(대과 기준) 선물 사과 수요는 큰 폭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것이 유통업계의 전망이다.

여기에 물밀듯이 들어오는 값싼 수입과일은 사과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사과는 인건비 등으로 인해 생산원가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 수입과일은 낮아지는 관세장벽으로 인해 점점 가격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서 거래되는 사과 한 상자(3kg)는 1만7921원으로 지난해 1만6966원 보다 5.6% 올랐다. 반면 수입 과일의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뉴질랜드 산 그린키위 한 팩(120G) 가격은 5000원 대로 지난해보다 30% 가까이 떨어졌다. 칠레산 포도(6kg) 가격도 1만 3000원 대로 전년 동기 40% 떨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과 농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사과담당 연구원은 “오렌지 수입에 맞춰 위기를 맞았던 제주도 감귤이 한라봉으로 위기를 타개했듯이 충주사과도 대한민국 1%를 지향하는 고품질 사과생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꽃농사 포기하고 작목전환까지…울상짓는 화훼농가

화훼재배 농가들에게는 2~3월 졸업, 입학 시즌이 대목 중의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동안 작황 부진이 지속된 데다가 청탁금지법 이후 소비가 급감하면서 화훼농가들이 시름이 깊어져만 가고 있다. 영남지역의 꽃 집산지인 김해 원예농협 공판장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꽃과 중도매인들로 붐벼야 하지만 올해는 한산하기만 하다. 출하량이 많이 줄어든 건 꽃 농사를 포기한 농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화환과 선물용 소비가 급감하면서 거베라, 국화, 난 재배농가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예식장과 장례식장에 줄지어 서 있던 화환은 눈에 띄게 줄고 화환가격을 낮추기 위해 조화와 수입국화가 사용되면서 국산 생화 소비는 더욱더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연말 연초 인사철에 주고받는 축하 난 수요도 사라져 농가 매출은 사실상 반토막이 났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들로 인해 꽃 농사를 포기한 농가와 더불어 궁여지책으로 딸기·토마토·잎채류 등으로 작목을 전환하면서 우려했던 매출 급감은 현실이 됐다.

경북 영주에서 국화농사를 짓던 한 화훼농가는 국화를 심지 않고 딸기를 심었다. 청탁금지법으로 중국산 조화사용이 늘고 화환 재활용으로 생화 수요가 급감하자 할 수 없이 작물을 바꾼 것이다. 많은 화훼농가들이 살기가 너무 힘들어 화훼를 포기하고 다른 작물을 심으려고 하는 상황이지만 이렇게 되면 재배가 몰리면서 가격하락의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청탁금지법 시행지침 조속히 시정·보완돼야

한우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한우는 수입육과의 경쟁력이 가격이 아닌 품질에 맞춰 모든 정책과 사업이 진행돼 왔지만 부정청탁금지법이라는 한우고기 수요 차단 제도로 농가들 모두 고사직전에 몰리게 됐다”며 “정부가 고래하고 있는 금액의 상향 조정은 답이 될 수 없고 반드시 농축산물은 법안에서 제외하는 방향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오엽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유통조성처장은 “1월에는 딸기를 가장 많이 먹는 시기이지만 청탁금지법을 우려해 화훼농가들이 딸기 농가로 대거 전업하면서 딸기가격이 하락하는 등 농수축산업에 도미노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며 “법 시행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면 시정하고 보완돼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청탁금지법은 국가가 법률로 국민들의 사적인 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해 국민의 자유가 침해받으면서 서민경제와 농수축산업에 치명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국민권익위는 의심되면 하지 말라는 식의 지침만 정할 것이 아니라 적용범위와 품목을 배제하는 등의 청탁금지법 시행지침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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