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손 아닌 보이지 않는 손” 통한 수급조절 필요
“보이는 손 아닌 보이지 않는 손” 통한 수급조절 필요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5.09.1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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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농유가공산업 수급조절 문제 이야기 두번째

낙농진흥회로부터 원유를 구입해 가는 유업체들이 원유구매량을 줄이겠다는 의사를 타진하면서 추진되고 있는 낙농진흥회의 하반기 감산계획이 낙농육우협회와 집유조합 등 생산자 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유업체들은 자사 직속농가들의 쿼터감축, 유제품 할인판매 등 다양한 자구책을 펼치고 있다며, 낙진회에서 구매해 가는 원유량도 감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특히 유업체 중 남양, 매일, 한국야쿠르트, 동원과 같이 치즈, 발효유, 식음료와 같은 가공품 비중이 높은 유업체의 경우 TRQ물량으로 도입되는 저가의 수입유제품, 저가에 납품받는 원유 등을 활용해 백색시유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메우며 안정적으로 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백색시유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경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당장 국내 1위 서울우유협동조합의 경우 치즈나 쥬스 같은 가공품이 있기는 하지만 백색시유 비중이 워낙 높다보니 상반기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고 서울우유보다 백색시유 비중이 높은 부산우유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가공조합뿐만 아니라 비락, 건국, 연세와 같이 경쟁력 있는 가공품을 보유하지 못한 중소유업체들의 근심도 깊어지는 상황이다.

■ 명확한 기준 없이 이뤄진 쿼터거래 관행 ‘화 불러’

생산자단체와 합의를 전제로 감산을 논의하자는 낙농육우협회와 달리 생산자의 다른 한축인 농협중앙회 회원 집유조합들의 입장은 형평성의 문제를 들고 나왔다.

농협 집유조합들 대부분이 낙농진흥회 집유일원화사업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인데, 낙진회 농가들이 일방적으로 수급조절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며, 이번 감산논의에서 낙진회 뿐만 아니라 다른 유업체 직속농가, 가공조합 농가들도 같은 비중으로 줄이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기준원유량을 설정하고 어느 정도 비율로 줄이냐에 있다.

어떤 농가는 감산시 생존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감소가 불가피하고 어떤 농가는 비싼값에 쿼터를 구매한 상황에서 쿼터 감축은 재산권 침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쿼터제 도입 초기 정부가 특별한 기준 없이 쿼터 거래를 용인하면서 우량 유업체와 거래하는 농가의 쿼터가격은 고가에 형성됐고, 중소유업체와 거래하는 농가의 쿼터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이 거래가 이뤄지면서 쿼터를 정부나 제3의 주체가 매입해 생산량을 감축한다 하더라도 어느 유업체에 쿼터가격을 맞춰야 하느냐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이미 유업체 주도로 감산을 한 유업체 직속농가들도 있기 때문에 낙농진흥회 소속농가들의 동시 감산을 불합리하게 받아들이는 농가들도 발생할 수 있다.

■ 낙농가는 한우·양돈농가보다 더 이기적인가?

쿼터제가 시행되고 있어 어느 품목보다 수급조절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낙농유가공산업은 주기적으로 수급조절 실패로 어려움을 겪는다.

수급조절이 잘 안되는데는 농가들의 비협조가 한몫하는데, 공급이 과잉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수급조절 이야기를 꺼내드는 양돈과 한우업계와 다르게 낙농업계가 수급조절에 미온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낙농가들이 한우와 양돈농가보다 기회주의적이고 더 이기적인 것일까.

다른 품목에 비해 낙농가들이 수급조절에 비협조적인 이유는 공급이 과잉되더라도 당장 손실을 보지 않는 구조 때문이다.

고정된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는 원유거래의 특성상 소비부진에 따른 손실은 유업체나 낙농진흥회가 입을 뿐이지 농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입지 않기 때문이다.

한우나 양돈 등의 품목은 수급상황에 따라 가격이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기 때문에 수급조절 이슈에 농가들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낙농가들의 수입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수급상황이 아니라 오로지 기본가격, 생산량, 인센티브가 지급되는 지방, 체세포, 세균수이기 때문에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생산량 감축 논의에 농가들이 협조적으로 나올 리 만무하다.

■ 수급조절이라는 한배 태우기

한우나 양돈업계가 수급조절에 신경 쓰고, 낙농업계가 한우나 한돈보다 수급조절에 신경을 덜쓰는 이유는 낙농가들이 더 이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우 농가들에게 수급균형은 곧 돈을 벌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는 일이지만, 낙농가들은 원유를 조금이라도 더 생산해야만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에 생산량 유지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생산량을 늘리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농가들이 수급조절에 협조적으로 나오게 만드느냐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낙농업도 수급조절을 할 때 한우나 양돈처럼 농가의 수입이 늘어나는 인센티브가 발생해야만 한다.

원유가거래 방법의 조그마한 변화만으로도 농가들이 수급조절에 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게 할 수 있는데, 낙농업의 특징상 고정된 가격에 원유의 거래는 필수적이지만 이로 인해 시장상황에 따라 수급이 맞춰지지 않기 때문에 80~90%의 물량은 고정된 가격에 거래를 하고 10~20% 물량을 수급상황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 도매시장과 같은 시장기구를 통해 거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10~20%의 물량의 가격은 수급조절 위원회에서 수급상황에 따라 책정을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실제 원유를 거래할 수 있는 사이버시장을 개설해 거래를 하며 협의나 또는 전자입찰을 통해 가격이 결정되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유 거래에 시장가격 도입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낙농가들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 낙농유가공업계는 낙농진흥회를 통해 이미 기준원유량을 초과한 물량에 대한 탄력적인 가격 조정으로 수급을 조절해 오고 있다.

이미 해오고 있는 쿼터 초과물량에 대한 가격 조정으로 수급을 맞춰왔던 경험을 살려 이 초과물량에 해당하는 일정 물량을 공식적으로 시장기구를 통해 거래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수급을 정교하게 맞춰가자는 것이다.

■ 시장기구를 통한 수급조절

원유쿼터를 타이트하게 농가에 배분하고, 가격 변동이 되는 시장을 조금 더 확대함으로써 보이는 손 즉, 재량에 의한 가격 결정과 수급조절이 아닌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불리는 시장기구를 통해 수급조절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보이는 손에 의한 수급조절은 수급조절을 시행하는 주체에 대한 불만과 투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큰 사회적 비용, 거래비용을 유발하게 된다.

우리 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원유가 부족하게 되면 유업체들은 쿼터 이외의 물량을 더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며 원유가격을 상승시키게 되며 원유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자연히 농가들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생산량을 늘려 수요에 대응하게 된다.

반대로 수요감소로 유제품의 판매가 부진하게 되면 유업체들은 원유구매를 줄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농가는 원유를 판매하기 위해 원유가격을 낮추게 되고 중장기적으로 생산량 감축에 나서게 되면서 수급을 맞춰나가게 된다.

■ 감산위한 재정 투여는 선택 아닌 필수

문제는 시장기구를 통한 수급조절을 도입하기에는 현재 원유공급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크게 벗어나 있다는데 있다.

우선 과거 대규모 재정투입을 통해 실시했던 농가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다시금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미 낙농업계는 미국, EU,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유제품을 수출하는 낙농선진국과 FTA 체결하면서 대규모 TRQ물량을 제공해 우리 낙농업계가 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낙농업계가 당면한 수급조절 이슈에 재정투입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낙농업계의 희생을 담보로한 수급조절을 추진할 경우 거센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최소한 시급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재정투여라는 결심을 가져야 한다.

만약 정부가 투여할 재원이 부족하다면 유가공업계와 낙농업계를 설득해 정부와 민간이 일부 매칭해 펀드를 조성하는 방법을 통해 쿼터의 대규모 매집에 나서고 필요 상황에 따라 쿼터를 신축적으로 시장에 판매하거나 사들임으로써 원유의 수급을 먼저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수급의 큰 틀이 짜여 지면 앞에서 제안한 시장기구를 도입해 수급균형을 정밀히 맞춰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낙농업계도 보이는 손이 아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급을 맞춰나가는 노력을 할 때가 온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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